(경기=NSP통신) 김종식 기자 = 매년 한파가 찾아오는 12월이 오면 그랑프리 대상경륜 기대감으로 벨로드롬은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2020년 경륜은 코로나19 여파로 정상 운영되지 못하며 선수는 물론 경륜 팬 모두에게 아쉬움과 함께 힘겨웠던 한 해로 경륜 역사에 오래도록 기록될 전망이다.
이번 주는 경륜 출범 후 처음으로 시행되지 못하는 그랑프리 대상경륜 경주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설경석 최강경륜 편집장의 도움으로 역대 그랑프리 경주를 분석하는 한편 당대를 대표했던 강자들을 분석해 봤다.
◆ 2기 원창용, 김보현, 4기 엄인영, 6기 지성환 초창기 경륜의 간판스타로 활약
경륜이 출범 후 처음으로 시행 예정이었던 1996년 그랑프리 대상경륜은 폭설로 취소가 됐다.
요즘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지만 덕분에 당시 마지막 대상경주(경륜 사장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1기 정세연 선수가 그랑프리 초대 챔피언에 오르게 됐다.
1997년에 시즌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실력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아마추어 스프린터 간판이었던 김보현을 비롯해 지구력이 탄탄한 원창용 저돌적인 경주 운영이 돋보였던 정성기가 데뷔 이후 곧바로 경륜장을 접수했다.
이때부터 창원팀이 경륜장의 강팀으로 등극하게 되는데 두 번째 그랑프리인 1997년에는 원창용이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8년 연말 그랑프리는 김보현이 품에 안았다.
이후 3기로 입문한 도로 최강자인 용석길과 추입의 달인 허은회가 2기 3인방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벨로드롬은 5강 체제로 굳혀져 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4기로 입문한 엄인영과 주광일이 등장하면서 벨로드롬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엄인영은 ‘경륜 황제’ 칭호를 얻을 만큼 화려한 조종술과 공격적인 경주 운영에 나서며 단숨에 랭킹 1위로 등극했다.
당시 엄인영은 연대율 100%라는 경륜 역사의 새로운 진기록을 만들어낸데 이어 1999년 연말 그랑프리까지 석권하게 된다.
두 선수의 출현으로 인해 경주의 박진감이나 스피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였다. 이때부터 4대 천왕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엄인영, 주광일, 원창용, 김보현이 그 주인공들이다.
엄인영은 한체대 출신으로 팔당에 새롭게 보금자리는 만들며 수도권 팀들을 규합했다. 이는 창원팀의 독주를 막기 위한 일환이었다.
바로 이때부터 경륜 경기에서 지역 간 대결 구도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수도권을 규합한 팔당팀과 남부권의 대표주자인 창원팀의 대결 구도로 인해 빅게임이 열리는 날이면 잠실 경륜장은 구름관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지난 2000년 엄인영이 시드니 올림픽 참가 이후 슬럼프에 빠진 사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KM 독주, 금메달리스트인 지성환(6기)이 벨로드롬에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1KM 독주 출신답게 강력한 선행력을 보유한 지성환은 연일 선행과 젖히기 맹공을 퍼부으며 4대 천왕을 굴복시켰고 2000년 밀레니엄 시대 첫 그랑프리 우승자로 기록됐다.
잠시 수도권에게 최강의 자리를 내주었던 창원팀은 지성환의 공격력을 바탕으로 또다시 무적함대의 위용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지성환은 1인 독주 체제를 굳히며 ‘경륜 지존’이라는 최고의 호칭을 얻기에 이른다. 하지만 지성환의 전성시대도 오래가지 못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이듬해 수술대에 오르며 슬럼프에 빠졌고 결국 한동안 이어졌던 창원팀의 독주도 멈추게 된다.
◆ 8기 홍석한, 11기 조호성 국가대표 출신들 나란히 3연패 등극
이후 단거리 스프린터 간판이었던 7기 현병철과 1KM 독주 최강자였던 8기 홍석한이 차례로 등장하며 가평과 대전팀이 신흥 강팀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현병철은 2001년 챔피언에 올랐고 홍석한은 2002년과 2003년 그랑프리 연승을 차지했다.
이후 홍석한은 2008년 우승까지 도합 3번에 걸쳐 그랑프리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경륜 명예의 전당에 첫 이름을 올렸다.
2004년 그랑프리에서는 약체로 꼽힌 이경곤과 김민철이 당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홍석한의 3연패를 저지하며 깜짝 동반입상에 성공하기도 했다.
2005년 잠실 경륜장에서 열린 마지막 그랑프리 결승전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이클 간판인 조호성 선수의 등장은 경륜의 큰 흐름을 바꿔놓았다.
조호성은 아마추어 시절 포인트와 도로 선수로 지구력이 강점이었다. 탄탄한 기본기와 체력을 앞세워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벨로드롬을 평정하기에 이른다.
2006년과 2007년 연이어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 조호성은 최초 그랑프리 3연패라는 대기록을 작성한 후 올림픽 메달의 꿈을 위해 경륜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 이명현, 노태경을 등에 업고 호남팀 상승, 박병하, 이현구, 박용범 등 창원·김해팀 부활
조호성 공백의 아쉬움은 9기 이욱동이 맹 활략하며 잠시 달래주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전환시킨 선수는 16기 이명현이었다.
국가대표 1KM 독주 최강자 출신으로 경륜에 최적화된 페달링과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에 둔 이명현은 지성환의 선행력과 조호성의 묵직함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주에 둥지를 튼 이명현은 광주팀인 10기 김배영, 13기 노태경, 송경방과 함께 호남 강세론에 불을 지폈다. 특히 고기어를 바탕으로 파워 페달링을 만들어내며 2010년(송경방 우승)부터 2011년(이명현 우승), 2012년(이명현 우승)까지 호남팀이 3년 연속 우승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이명현이 최선봉에서 리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남 팀의 독주도 오래가지 못하고 2013년 막을 내려야 했다. 초창기 경륜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창원, 김해팀이 부활했기 때문이다.
2013년 순발력의 달인 박병하의 우승을 시작으로 2014년은 이현구, 2015년 박용범이 우승을 차지하며 3년 동안 경상권 전성기를 이끌었다.
◆ 수도권 부활 이끈 정종진, 그랑프리 4연패 대기록 달성
이렇게 호남과 경남이 번갈아 가며 전성기를 구가하는 사이 수도권의 부활을 위해 돌격대장을 자처한 선수가 바로 그랑프리 역대 최다 우승자인 20기 정종진이다.
2013년 20기로 경륜에 갓 입문 한 정종진은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경륜 전문가들이나 경륜팬들 모두 몇 년 후 그가 그랑프리 4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훈련 독종으로 불린 정종진은 본인의 한계를 인지하고 단점을 극복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리한 신체 조건을 극복하는 한편 파워 페달링을 위해 매일매일 연구에 몰두하며 꾸준히 체질을 개선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곱절에 가까운 훈련량은 그의 성장 속도를 배가시켰다. 이렇게 묵묵히 본인과 싸운 3년 후 그는 당당히 경륜 랭킹 1위에 오르게 된다.
여세를 몰아 2016년 그랑프리 첫 우승 도전에 나선 정종진은 창원, 김해 연합인 성낙송과 박용범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리며 그랑프리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승리하는 법을 터득한 정종진은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이후 2016년 이후 2017년과 2018년, 2019년까지 무려 4번이나 그랑프리 왕좌를 차지하며 경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또한 경륜 48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만들어 내며 신기록 재조기로도 불리고 있다.
설경석 최강경륜 편집장은 “만약 2020년 그랑프리 대상경륜이 열렸다면 정종진의 그랑프리 5연패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 편집장은 “정종진과 경륜 5인방인 황인혁, 신은섭, 정하늘, 성낙송의 맞대결을 보지 못하지만 2021년에는 슈퍼루키 임채빈까지 가세하는 만큼 더욱 멋지고 박진감 넘치는 경륜 경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NSP통신 김종식 기자 jsbio1@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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