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보니
코스닥 ‘대규모 퇴출’ 예고…시장 “건전성 강화” vs “고의 상폐 악용 우려”
(서울=NSP통신) 임성수 기자 =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골자로 한 상장폐지 제도 개편에 착수했다. 코스닥 시장을 ‘다산다사(多産多死)’ 구조로 전환해 누적된 부실을 정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시장 신뢰 회복과 질적 성장 기반 마련을 강조하지만 시장에서는 단기 변동성 확대는 물론 고의적 상장폐지 등 제도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시장 관계자들에게 들어보니 “건전성 강화라는 개편의 취지와 제도의 방향성에 동의한다”는 평가와 함께 “투자자 보호 장치 없는 속도전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교차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5년 코스닥 상장폐지 결정은 총 38건으로 최근 3년간 증가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장기간 누적된 부실기업은 여전히 시장에 잔존해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실제 지난 20년간 코스닥에 1353개사가 신규 상장했으나 퇴출된 기업은 415개사에 불과하다며 ‘다산소사’(多産小死)의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강조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 시장의 시가 총액은 8.6배 확대됐지만 지수 상승폭은 1.6배에 그쳤다. 외형과 달리 체질 개선은 더뎠다는 진단이다.
이에 정부는 ▲집중관리기간 운영 ▲4대 상장폐지 요건 강화 ▲상장폐지 절차 효율화 등 세 축을 중심으로 제도 개편에 나선다. 주요 요건 강화는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집중관리단 가동…시총·동전주 요건 강화로 ‘퇴출 압박’

금융위는 거래소에 상장폐지 ‘집중관리단’을 구성해 이달부터 내년 7월까지 집중관리기간을 운영한다. 기존 코스닥 상장폐지 심사 3개 팀에 신설 1팀을 더해 총 4개 팀 체제로 확대하고 단장을 중심으로 상장폐지 진행상황을 정기 점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26년 거래소의 경영평가 시 관련 실적에 20% 가중치를 부여해 집행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시가총액 기준 강화도 속도를 낸다. 올해 1월 상장폐지 기준이 4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상향된 데 이어 200억원·300억원 단계적 상향 일정도 앞당겨질 전망이다. 조정 시점은 7월 1일과 2027년 1월 1일로 예고됐다. 당국은 일시적 주가 부양으로 요건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세부 기준과 시장감시를 병행할 계획이다.
주가 1000원 미만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요건도 신설된다. 금융위는 동전주가 높은 변동성과 낮은 시가총액 특성으로 인해 주가조작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액면병합 등 형식적 조치로 규제를 우회하지 못하도록 ‘병합 후 액면가 미만’도 상장폐지 요건에 포함한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최근 코스피 강세 흐름이 함께 거론됐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코스피 5000포인트 달성 이후 정책 동력이 코스닥 개편으로 확장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피 시장의 예상 밖 성과 이후 코스닥 시장 체질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건전성 강화라는 큰 틀에서 보면 장기적으로는 투자 유입과 밸류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완전자본잠식·공시 위반 ‘칼날’ 강화…개선기간 단축

상장유지 심사 요건도 한층 강화된다. 완전자본잠식에 대한 상장폐지 기준이 기존 사업연도 말에서 반기 기준까지 확대되기 때문. 다만 반기 기준 적용시에는 기업의 계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상장폐지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공시위반 기준도 엄격해진다. 최근 1년간 누적 공시벌점 기준은 15점에서 10점으로 하향 조정되며 중대·고의적 공시 위반은 1회만으로도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된다.
코스닥 실질심사 시 부여되는 최대 개선기간은 1·2심 합산 1년으로 축소된다. 기존에는 1심과 2심에서 각각 최대 1년씩, 사실상 최대 1년 6개월까지 가능했으나 이번 개편으로 2심 기간이 6개월로 줄어든다. 금융위는 해당 심사 및 절차의 신속성과 효율화의 제고를 위해서 상장폐지 가처분 소송과 관련해서도 법원과 협의할 계획이다.
최근 5년간 상장폐지 가처분 소속 85건 중 인용은 2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평균 결정 소요기간은 2022년 103일에서 2024년 202일로 증가하는 추세다.
◆“시장 신뢰 회복” vs “상폐 패널티 없으면 투자자 피해”
시장 반응은 뚜렷하게 엇갈린다. 제도 개편의 취지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의 목소리가 일관됐으나 급격한 요건 강화가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학계에서는 상장폐지 개편 요건에 기업 거버넌스나 유통주식 기준에 대한 강화가 빠진 점을 지적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부실기업 퇴출은 시장의 건전성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라며 “단기 진통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한 관계자는 “다산다사 구조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외국계 자본 등 일부 기업이 규제 강화를 명분으로 고의적 상장폐지를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거 해외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자금조달 창구로 활용한 뒤 상장폐지를 통해 투자자 피해를 초래한 사례가 있었다”며 “상장폐지 시 경영진 책임이나 실질적 패널티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투자자만 피해를 떠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상장폐지 요건 강화는 늦었지만 올바른 방향”이라며 “수급 개선 같은 인위적 조치가 아닌 기업 거버넌스와 생태계 개선을 통해 시장의 기초체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기업 거버넌스 요건이나 유통주식 기준 강화가 이번 개편에 빠진 점은 아쉽다”며 “동전주같은 다소 주관적 요건보다 ‘공개’와 ‘상장’의 의미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구조적 요건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시장 질서 확립과 투자자 신뢰 회복을 내세워 속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퇴출의 엄정함만큼 책임의 엄격함도 병행돼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이번 개편이 코스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단기 충격을 키운 채 또 다른 논란을 낳을지는 향후 집행과정과 보완 장치에 달렸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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