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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 故 한순미씨, “이 생에 다시는 나 같은 ‘삶’ 없길...”

NSP통신, 류수운 기자, 2008-06-20 21:17 KRD1
#한순미 #성매매 #한국교정복지선교연합

굴곡 많은 36년간의 ‘삶’ 마감, “가난이 부른 참극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길”

NSP통신

(DIP통신) 류수운 기자 = “그의 삶은 외로웠다. 그의 죽음은 초라했다. 그래서 그의 가는 길은 눈물겨웠다.”

지난 19일 오전 10시 인천 성모자애병원엔 36년의 짧은 생을 눈물로 마감한 한 성매매 여성의 장례식이 슬픔속에 조용히 치러졌다.

故 한순미(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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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불러 온 비극속 한 비련의 주인공이다.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던 순미씨 가족. 이것이 그의 슬픈 가족사의 시작이다.

강원도 묵호에서 막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연명해 주던 부친을 일찌기 여읜 탓에 모친은 식당에서 품일로 가장의 무거운 짊을 어깨에 걸쳐 매야만 했다.

가난의 시련은 그의 소박한 꿈을 앗아가 버린채 냉엄한 사회속 그늘진 곳으로 인도했다.

그는 자신을 올가매고 있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내고자 집을 나섰다. 이 선택으로 그는 14년간의 굴곡진 삶을 살아야만 했다.

생애 첫 직장은 충남 공주에 있는 한 다방이었다. 단순히 커피 심부름이나 하고 주방에서 설겆이만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많다는게 그를 유혹했다.

잠자리와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월급은 차곡차곡 모아 모친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일 후 그는 이 다방 주인으로부터 일명 ‘티켓’이라는 성매매를 강요받기 시작했다.

거부하거나 도망치려 했지만 늘 감시와 폭력, 협박이 그를 괴롭혔다.

이후 그는 성매매 노예가 되어 전국에 있는 티켓다방과 집창촌 등지로 팔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 곳들은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팔려다닐 때 마다 업주끼리 건네주고 받은 소개비는 언제나 그의 빚으로 남았다.

알지 못하는 새 불어난 빚더미는 그를 성매매로 내몰았다.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받은 화대는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꽃 다운 나이 꿈 많았던 순미씨는 인생도 희망도 포기한 채 세상 밖으로 자신을 던졌다.

그런 그에게 몸의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지난 2005년 가을경 가슴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가슴엔 알 수 없는 단단한 혹이 만져졌다.

그러나 그는 병원을 찾아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빚 때문에 자유로운 외출이 허락되지 않았고, 하루도 쉴 수 없는 영업(성매매)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의 몸속에 찾아든 고통은 견뎌내기 힘든 상황에 다다랐다.

그는 용기를 내 지난해 10월 마지막으로 팔려간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 중 한 곳을 빠져나와 인천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모친의 도움으로 유방암 수술을 받으며, 심적으로 가장 편안한 순간을 맞이했다.

남은 삶을 모친과 함께 하고 싶어했던 순미씨는 따뜻한 사회의 품속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에게 계속해 도움을 주고 있던 한국교정복지선교연합회 주선장 사무국장에게 빚 때문에 쫒아오거나 협박을 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 ‘월세없는 전셋방’ 하나를 부탁했다.

이것이 진정 순미씨가 가난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가슴속으로 열망했던 행복한 소망 전부였다.

한국교정복지선교연합회는 이러한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기업, 단체, 개인 등 많은 곳들에 도움의 손길을 청해 모금된 돈을 모아 ‘한순미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이 집은 한순미 본인의 명의로 계약돼 최근 수리와 보수를 마쳤다.

지난달 22일 인천 성모자애병원에는 온 몸에 암세포가 전이된 순미씨가 입원했다.

병원측도 어떠한 치유책을 내 놓을 수 없는 상태에서 그의 고통만을 달래주는 최선을 보였다.

지난 17일 죽음의 길목에 다다른 순미씨는 거친 호흡속에서도 또렷히 “자신과 같은 성매매 여성이 다시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며 “한순미의 집을 오갈데 없는 출소자들의 보금자리로 사용해 달라”고 유언했다.

그동안 순미씨를 지켜보며 도움을 주기위해 발벗고 나섰던 주선장 사무국장은 “지난달 21일 한순미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순미씨는 ‘살고 싶다, 살려달라’고 눈물로 애원했습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무엇부터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 지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병원과 방송국 등에 협조를 부탁하게 됐지요. 다행히 인천성모자애병원과 DH 상조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순미씨에게 작은 보탬을 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소망한 작은 행복의 꿈인 ‘자신만의 집, 자신만의 공간’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나 가슴이 아려옵니다”라며 주 사무국장은 슬픔을 내비쳤다.

가난 때문에 돈을 벌고자 했고 가난 때문에 치료를 제 때 못해 죽음을 맞은 한순미씨의 한(恨) 많은 일생은 지난 19일 이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을 고하면서 막을 내렸다.

늘 혼자였던 그의 가는 길에는 노모와 한국교정복지선교연합회 회원 및 DH상조 관계자, 소식을 접한 여성단체 회원 등이 나와 지켜줬다.

현재 인천성모자애병원 뒷산 밑자락에는 고인이 되어버린 순미씨의 아름다운 소망이 담긴 그의 집만이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며 외로히 자리하고 있다.

DIP통신, swryu64@dip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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