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NSP통신) 염공료 기자 = 관동팔경 중 1경에 꼽히는 삼척에 자리한 죽서루(竹西樓)에 다녀왔다.
몇 년 전 휘리릭 사진만 찍고 돌아왔던 곳이라 못내 아쉬워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대관령 동쪽을 관동이라 하였다. 관동팔경의 2곳, 포석정과 삼일포는 지금 북한에 자리하고 있고 나머지 6곳이 영동지방에 자리하고 있다.
관동팔경이 자리한 지역을 가면 자기고장에 자리한 곳이 1경이라 말한다. 어느 곳이 1경이든 명승지로 풍광이 좋은지라 서로 1경이라 다툴 필요가 없을 듯하다.
죽서루는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객사의 일부로 연회를 열거나 삼척의 양반가들이 모여 시를 읊고 그림을 그렸던 곳이라 한다. 죽서루(竹西樓)라는 명칭의 설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동쪽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다. 죽장사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 하여 죽서루라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이름난 기생 죽죽선(竹竹仙)이라는 기생이 살던 집이 있던 서쪽에 지은 누각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지금은 전자의 이야기가 정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관동팔경은 모두 바다를 끼고 있지만 유일하게 죽서루는 내륙에 강을 끼고 있다. 암반위에 지어진 건물이라 기둥의 길이가 각기 다르다.
아래쪽의 기둥은 언뜻 보기에 16개로 되어 있지만 안쪽에 작은 기둥이 하나 더 있어 17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암반의 생김새를 따라 나무를 깍아 기둥을 만들고 그 틈새에 소금과 숯을 넣어 기둥의 부식과 벌레를 방지했다고 한다. 이런 건축기법을 그랭이공법이라 하는데 흔들림이 있는 지진에도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건축 기공법이라 한다.
아래 기둥을 살펴보고 누각을 오르다 보면 팔작지붕이 품위 있게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방이 탁 트인 누각 안으로 들어가면 시원함과 함께 천정에 붙어 있는 여러 현판들이 눈에 뜨인다.
시냇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칭하는 ‘제일계정’과 조선 정조 임금의 어제, 동안거사 이승휴, 율곡의 시가 걸려 있다. 여러 문인들이 죽서루를 칭송하는 글이 걸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아름다웠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천장도 두가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상석에는 우물반자로 되어 있는 우물천장과 사갓지붕의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마루도 우물정자로 되어 있다. 천장에는 불을 방지 하는 구름과 물방울, 청룡이 그려져 있다. 그 덕분이었을까 죽서루는 600년 동안 한번도 소실 된 적이 없다고 한다.
죽서루 앞에는 오십천이 흐르고 건너편 정자에서 보면 깍아지른 절벽에 아름답게 지어진 누각의 모습이 멋지다고 한다. 지금 큰 건물과 아파트가 보인다.
그 때문인지 오십천의 물도 많이 없어 보인다. 죽서루는 배흘림기둥과 민흘림기둥이 섞여 있으며 이는 수리과정에서 당시 상황에 맞는 기둥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시대의 건축법을 아우르고 있어 건축과 학생들의 답사 장소가 되기도 한다.
죽서루에 앉아 잠시 오십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쉬었다가 바로 옆에 있는 용문바위로 왔다. 신라시대의 문무왕이 사후 바다를 지키는 용이 되어 죽서루에 왔다 돌아가면서 꼬리로 내려쳤다는 곳이 용문 바위이다.
조선시대의 민간신앙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소원을 빌던 곳이기도 하다. 용문 바위 위쪽에 보면 성혈이 7곳이 있는데 이곳에 좁쌀을 넣고 기도를 한 다음 그 좁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잉태를 한다는 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후 어느 때 부터인가 용문을 지나면서 소원을 빌고 바로 돌아 나오면 이뤄진다는 설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도 그 설 때문인지 관광객들 중에는 굳이 이 용문을 지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삼척 죽서루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돌아보면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인다.
NSP통신/NSP TV 염공료 기자, ygr632@nspna.com
저작권자ⓒ 한국의 경제뉴스통신사 NSP통신·NSP 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