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新)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시대를 위한 화법(話法)[부산=NSP통신] 도남선 기자 = 스피치 분야의 스타강사 김미경이 논문표절 의혹이 제기된 후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는 소식에 이어 김미화, 김혜수의 논문표절 소식이 화제다.
방송·연예가의 논문표절은 지난 2007년 연예계를 강타했던 학력위조 파동 때처럼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논문표절 파동과 그에 따른 당사자들의 대응 방식을 통해 화법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영국에는 ‘미혼모의 변명’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결과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문화가 하나마나한 변명을 빗댄, 이런 속담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반면 못살면 조상을 탓하고, 부부사이가 좋지 않으면 궁합을 탓하는 우리에게는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고,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남의 탓’ 문화가 있다.
김미경은 “논문 짜깁기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면서도 “재인용을 (표기)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불찰”이라는 모순적인 해명을 내놓았다.
스스로 표절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성공을 시기하는 한 언론의 무자비한 테러의 희생자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동안의 성공은 자신의 덕이지만 현재의 실패는 내 탓이 아니라는 그 한마디에서 우리 사회의 ‘남의 탓’ 문화를 보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경우 용서하고 감싸주는 관대함이 있다
한편으로 필자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자신에게 닥쳐온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데에는 말솜씨, 즉 ‘지혜로운 변명’ 이 필요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변명(辨明)을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설명한다.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하는 것’과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히는 것’이다.
김미경의 경우 자신에게 닥쳐 온 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하여 전자의 ‘변명’을 내세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스스로 자신의 올가미에 엮여 버리고 말았다.
우리사회의 높아진 도덕 수준을 잊은 채 ‘야간대학원 졸업논문이 다 그런 거 아니냐’고 했다가 결국 쓰디쓴 실패를 맛보는 꼴이 된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던진 한 마디는 이 시각에도 주경야독에 힘쓰는 많은 이들에게 ‘멘붕’을 안겨 줬다.
나아가 자신의 생업을 뒤로 한 채 몇 달 이상 몇 년씩이나 학위논문에 매달려야 하는 이들과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준 거나 다름없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한 언론이 지적한 ‘논문 표절’보다는 젊은이들의 밝은 앞길을 이끌어 주는 표상이 돼 줄 것으로 믿었던 이가 ‘어차피 세상은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는 식으로 변명하고 나선 데에 대한 아쉬움과 배신감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김미경에 이어 논문표절 파동에 휩싸인 김혜수와 김미화의 경우를 보자.
김혜수는 자신의 학위논문이 표절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발 빠르게 ‘표절사실을 인정한다. 죄송하다’며 인정, 사과하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표절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며 자신을 위한 변명도 곁들였다.
반면 김미화는 상당부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논문의 표절 지적을 위해서는 과학적, 학문적으로 지적해야 한다. 학계에서 정평이 난 이론을 인용한 것이고, 그 이론을 내가 썼다고 주장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며 (자신의 논문표절을 보도한 언론사를 대상으로)형사고소를 준비하겠다고 벼른다.
김미경의 대응방식을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다.
이 두 사람의 대응 방식에는 미세하지만 분병한 차이가 있다.
김혜수는 ‘행동으로 말하는’ 연기자이고 김미화는 ‘언어로 말하는’ 방송인이다.
말솜씨에 있어서는 김미화가 단연 앞선다.
그러나 사태 수습을 위한 변명(辨明) 능력을 놓고 보면 김혜수가 한 수 위다.
김혜수는 소속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며 감성적, 비정치적으로 말하고 김미화는 본인이 직접 말하며 감정적, 정치적인 화법을 사용했다.
김혜수는 여론의 추이를 보아가며 자신이 직접 사과할 기회가 더 있다는 점에서도 노련함이 엿보인다.
이 두 사람의 대응 방식을 김미경이라면 어떻게 분석했을까?
자신의 말솜씨로 거둔 성공도, 자신의 한 마디가 불러온 실패도 모두 자신의 몫이다
말솜씨가 인정받는 시대다.
어떤 이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시대가 다시 왔다고도 한다.
여기서 언(言)은 표현력이다.
아무리 스펙이 뛰어나더라도 조리 있고 또렷한 말솜씨가 없다면 인정받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내용적으로 논리적이며 형식적으로는 발성과 발음이 분명한 말솜씨는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단한 내공쌓기(?)를 통해 비로소 이루어진다.
우리사회가 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성공과 소통을 위한 화법 역시 단기 속성학원이나 책에서 얻는 요령만으로는 곤란할 것이다.
본 칼럼을 기고한 방송인 최인락(52·사진·TBN부산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은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문학부와 일반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동 대학원의 박사과정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공부 중이다. 1983년 부산CBS를 시작으로 울산, 마산, 부산MBC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을 진행했다. 현재 뜻이 맞는 방송인들과 함께 다문화 사회를 위한 한누리방송(kmcb)을 운영 중이다. 사단법인 한국다문화예술원 부산본부장, 한국방송언어연구원 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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