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NSP통신) “내국인 사찰 안했으면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자살하나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의 트윗이다. 이 시장은 그러면서 ‘국정원 직원 유서를 믿으면 바보, 지금은 독재시절’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21일 “직원의 자살이 맞냐는 댓글이 인터넷에 많은데,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야당 정치인 어떤 분은 전혀 유서같지 않다고 한다”며 “사찰을 안했으면 왜 자살하느냐고 하는데,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인터넷상에서 옮기는 것은 고인과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판했다.
이처럼 경찰이 국정원 직원 임모 씨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여전히 사망 경위를 두고 정치적 공방이 계속되는가 하면 타살이니, 음모론이니 하는 근거 없는 괴담(怪談)들도 떠돌고 있다.
이른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마다 따라 붙는, 정치적인 목적의 괴담 생산과 유포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 괴담, “사회적 공기(公器)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해 행위”
이 괴담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 마치 첩보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강압에 의해 유서를 쓴 뒤 타살 당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말하자면 국정원이 내국인 해킹을 위해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도 모자라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직원을 무참히 살해한 비정한 집단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급기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각종 괴담에 대해 “사회적 공기(公器)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해 행위”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서 원장은 21일 “모든 과학적 증거가 자살로 나타나는데도 타살설이 끊이지 않는 세태가 답답하다”며 “특히 많은 국민들이 주시하는 정치인·언론인이라면 적어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서 의혹을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또 “과학수사를 불신하는 세태를 만들어서 진짜 처벌받아야 하는 강력사범 등이 수사 결과에 저항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며 “과학자들의 결론을 선택적으로 믿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이나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과학자들의 ‘과학적인’ 결론을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아전인수를 통해 변질시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유서는 말한다.
한편으로 볼 때 유서가 발견됐고, 가족들에 의해 유서가 조기에 공개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유서에는 자살의 이유가 어느 정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선 경찰들은 유서는 사망의 원인을 수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고 말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연사와 달리 대부분 극도의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 유서는 일상적인 편지와 달리 문맥이 맞지 않거나 비정상적으로 길거나 반대로 짧거나 하는 등 형식이 따로 없다. 심지어는 가지고 있던 지폐나 손바닥에 마지막 말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하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기도 한다.
이에 비추어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이 직원이 ‘감사합니다’라고 글을 맺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유서 같지 않다고 하는 것도 억측이다.
◆ 남겨진 이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
자살의 원인을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연구한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는 ‘자살의 이해’에서 진짜 유서에는 자신의 극단적 선택이 사람들에게 줄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표현하는 경우에도 문장 자체는 담담했고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고 하였다. 임모 씨의 경우에도 가족들에게 ‘사랑과 고마움, 미안함’을 눈물로 적고 있다.
또 우도 그라스호프는 ‘자살자들이 남긴 유서를 읽는 것은 자살을 선택하고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의 마지막 인생의 한 부분을 함께 공유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당사자가 비록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신중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2013년 현재 우리나라 자살인구는 10만 명 당 28.5(OECD 평균은 12.5명)으로 34개 회원국 중 10년 연속으로 1위다. 보험개발원은 자살이 4대 사망 원인에 속한다는 자료를 내놓아 충격을 주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사회문제인 자살에 대해 마치 남의 말 하듯이 함부로 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에밀 뒤르켕은 자살위험 인자를 경제적 손실, 지위의 실추, 질병이나 외상, 친지나 지인의 사망 그리고 소송 등으로 보았다. 세상의 모든 자살을 이 잣대로 분석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는 적어도 그 정도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다.
◆ 최인락 NSP통신 칼럼니스트는 부산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을 공부했으며, 방송인으로서 부산MBC ‘별이 빛나는 밤에’, TBN 한국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 등을 진행했다. 현재는 방송, SNS 등에 쓰이는 매체언어를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옴니암니’는 ‘다 같은 이(齒牙)인데 자질구레하게 어금니 앞니 따진다.’는 뜻으로, 아주 자질구레한 것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매체들의 사소한 표현을 소재로 우리말을 보살피는 길을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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