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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해보니

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 더 큰 무대로 나아가기를

NSP통신, 강수인 기자, 2025-02-18 14:17 KRX2
#라파치니의정원 #뮤지컬 #대학로 #창작산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부족한 개연성을 감싸는 음악의 힘
공간의 한계, 미디어아트로 벗어나

NSP통신-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 속 김대종, 김늘봄, 신진경 배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
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 속 김대종, 김늘봄, 신진경 배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

(서울=NSP통신) 강수인 기자 = “누구든지 너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으려 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거야.”

사랑이라는 단어로 감싸줄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에서 주인공인 과학자 라파치니의 비뚤어진 사랑은 딸(베아트리체)을 ‘손끝만 스쳐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괴물’로 키워낸다. 라파치니에 대한 부하 리자베타의 짝사랑은 판단력을 흐려 그의 실험을 까발리고 주민들을 선동,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결말을 초래한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지오바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결국 지오바니 스스로마저 그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바꿔버린다. 어긋나버린 사랑은 그 누구도 소중한 이를 지켜내지 못하고 끝나버린다.

지난 15일 저녁 서울 대학로 플러스씨어터 관람한 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돼 지원을 통해 제작된 창작 뮤지컬이다.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소설 ‘라파치니의 딸’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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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으로 부인을 잃고 딸을 지켜내려는 ‘라파치니’ 역은 김대종, 김종구, 박유덕이 연기한다. 아버지 라파치니에 의해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워졌으나 이후 라파치니에 맞서게 되는 인물인 ‘베아트리체’ 역에는 한재아, 박새힘, 전민지가 함께한다.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온 길에 베아트리체를 보고 첫 눈에 반한 ‘지오바니’ 역은 유현석, 황순종, 정지우가 맡는다.

이날은 박유덕(라파치니), 전민지(베아트리체), 유현석(지오바니), 지혜근(발리오니), 신진경(리자베타) 배우가 열연했다.

NSP통신-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 속 라파치니 역 김대종.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 속 라파치니 역 김대종.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익숙한 스토리와 연출…‘모방’은 ‘창작’의 필수조건일까

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의 스토리는 어딘가 익숙하다. 아내를 잃고 홀로 딸을 키우며 딸이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독이 스며들도록 만드는 라파치니.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린 이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과 ‘라푼젤’을 통해 비슷한 스토리를 접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대놓고 판타지이지만 뮤지컬 ‘라파치니’는 ‘의사의 실험’이라는 리얼리티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짧은 러닝타임 탓인지 개연성의 섬세함이 떨어져 그의 딸 베아트리체의 몸에 어떻게 독이 흐르게 됐는지, 또 몸에 독이 (핏줄을 통해서일까) 흐르는데 어떻게 손이 닿기만 해도 마치 염산에 닿은 듯 상대방을 해칠 수 있는 건지 납득하기가 어려운 설정을 보여준다.

이미 라파치니 정원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정원으로 달려온 지오바니 스토리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원을 밖에서 볼 수 있다면 안에서도 밖을 충분히 내다볼 수 있을 텐데 자꾸만 온통 새하얀 옷을 입고 나온 베아트리체는 마치 태어나서 달과 별을 처음 본 사람처럼 행동한다. 정원에서 보는 달과 문밖에서 보는 달이 다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애초에 정원의 위험을 알면서도 베아트리체가 외부인을 단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고 그와 닿는 것 자체가 파멸을 불러일으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알면서도 라파치니는 지오바니의 침입을 암묵적으로 허용한다. 영원히 딸과 함께 괴물로 살아갈 수 있는 배우자를 만들기 위함이었던 것인지 라파치니는 지오바니에게도 독을 주입해 ‘살아있는 독’을 만든다. 이러한 ‘계획’이 있다면 왜 지오바니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가로막은 것인지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독성이 가득한 식물들을 키워내는 라파치니의 악행을 단 한 번도 막아서지 않은 베아트리체에 대해 ‘억울한 어린 양’의 모습을 투영한다거나 그런 라파치니를 짝사랑 하지만 그의 모든 실험 정보를 단숨에, 몰래 넘겨버리는 리자베타의 행동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이 외에도 베아트리체가 자신의 위험한 ‘손’으로부터 외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을 착용한다는 설정과 세상 밖으로 나와 각성할 때 겉옷을 화끈하게 벗어던지는 모습은 ‘겨울왕국’의 엘사가 이미 보여준 모습이다. 한 마디로 ‘겨울왕국’에 ‘라푼젤’을 섞은 뒤 ‘프랑켄슈타인’을 몇 방울 떨어트리면 ‘라파치니의 정원’이 되는 셈이다.

NSP통신-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 속 배아트리체 역 한채아 배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 속 배아트리체 역 한채아 배우.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중적인 노래와 연기력 ‘경쟁력’

개연성이 부족하지만 ‘라파치니의 정원’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음악과 배우에 있다. 뮤지컬 노래 특유의 무거움보다는 음원차트에 올라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대중성이 담긴 노래들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베아트리체와 지오바니가 함께 노래하는 부분이 유독 배우의 연기와 감정을 빛낸다. “고요하던 내 세상에 웃음 소리 가득해. 믿을 수 없어 당신의 세상 내 앞에 있어. 지금 나 살아있는 것 같아”라는 가사로 베아트리체와 지오바니의 러브스토리 포문을 연다. 베아트리체가 마음속으로 그려온 따뜻함을 그림으로 보여준 지오바니,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 감미롭고 애절한 선율로 잘 표현된다.

또 베아트리체의 위험함을 알고도 사랑하겠다는 지오바니의 순애보는 “그녀에게 가시가 있다 해도 난 그대를 끌어안겠어요. 그녀에게 빛이 없다 해도 이 어둠 속에 기꺼이 갇히겠어요. 멈출 수 없는 이 마음도, 닿을 수 없는 당신도 더는 두렵지 않아. 그저 있어줘요. 그 어디라도 그대 곁이라면 그대의 그림이 될 텐데”라는 가사에서 폭발한다.

이와 함께 소극장의 한계를 복합적인 조명과 LED 영상으로 뛰어넘었다. 정원 밖으로 나온 베아트리체의 머리 위로 흩날리는 꽃잎, 빛을 내며 날아가는 반딧불, 마녀사냥의 참혹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장면을 한껏 풍성하게 만든다.

창작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은 시나리오의 정교함과 연출의 섬세함을 더한다면 충분히 더 큰 극장에서 펼쳐낼 수 있는 작품이다. ‘정원’이라지만 너무도 빈약한 꽃들과 지오바니, 리자베타 등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촌스러운 베아트리체의 의상, ‘독’이 어디에 퍼진건지 알아채기 어려운 미흡한 분장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라파치니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 포인트를 찾아내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지금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라파치니는 ‘라파치니의 정원’에서 가장 매력이 없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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