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이재정 기자 = 코로나 1.5 단계에 맞춰 화산섬 제주는 지금 연극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극단 오이의 갈매기, 극단 도채비의 짬뽕은 지난 21일 오픈했고 27일 오픈하는 세이레아트센터의 제주어 연극 자청비가 그 주인공들이다.
연극 갈매기는 오랜만에 오상운 대표가 직접 출연해 화제고 자청비는 베지근한 제주어 대사로 짬뽕은 서울, 광주 공연이 코로나로 일찍 클로즈 되면서 올해 유일하게 진행되는 짬뽕의 지방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인간 생활 자체가 어쩌면 희극일지 모른다는 전제를 깔면 희극인이야말로 삶의 무대 절정에서 또 다른 인간들을 웃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그렇듯 이곳 화산섬 동네에도 다수의 희극인들이 있다.
세이레아트센터를 이끌고 있는 강상훈 대표나 지역에서 늘 실험적이라 신선한 오상운 배우가 있고 중견 변종수, 개성파 배우 진두선, 고정민, 차지혜 같은 좋은 희곡인들이 있다. 특히 2021년 문화도시 지정을 앞두고 시민들의 문화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제주시 입장에서 시민들이 대거 출현하는 광주 5.18을 다룬 블랙코미디 연극 짬뽕에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
특히 그 시민배우들의 정점에는 신인배우 김미경(오미란 역)이 있고 개성파 배우 진두선, 고정민, 차지혜와의 협연은 단연 눈에 띈다.
6개여 월간의 연습 무대에서 그녀는 시종일관 희극적인 말투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몰아넣었다. 심각한 씬을 넘기다가도 금세 표정을 희극적으로 풀어 뽀송뽀송한 웃음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소화해 나가는 모습은 광주 5.18의 오마쥬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특히 오른편 어깨와 왼편 어깨의 언밸런스한 뒷모습은 상당히 희극적이라 극중 오미란의 캐릭터에 충실한 시대아픔 같은 걸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제주 4.3 피해자의 아내로 제주 MBC 재연 드라마에 출연했던 그녀는 연습 내내 긍정왕이었다. 짧은 시간 제주 4.3 가족의 응어리를 열연한 그녀가 이번 광주 5.18의 아픔은 또 어떻게 해석해낼지 기대가 컸었다.
물론 광주 5.18이 남의 웃음거리가 될 만한 일이나 사건이 아님에 틀림없다. 하지만 극적 요소를 면밀히 살펴보면 실없이 익살을 부려 관객을 웃기는 장면이 많은 연극이기도 하다. 블랙코미디라는 용어가 그 경계를 드러낸다.
이탈리아의 즉흥 희극인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생각해보면 검정 가면을 쓰고 마름모꼴 얼룩무늬가 있는 타이츠를 입고 등장하는 캐릭터 아를레키노가 연극 짬뽕에서 작로역과 비교된다. 교활한 하녀로 애인 아를레키노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아를레키네따는 극중 미란과 비교하면 좀 더 극적일까?
사실 광주 5.18은 비참한 것이었지만 금두환이라는 캐릭터만 놓고 보면 한편 매우 희극적인 것이기도 하다. 캐릭터상 노출된 번뜩거리는 빗금진 이마나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명대사는 희극적 요소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등장하는 작품 짬뽕에 ‘가면과 화장’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은 큰 아쉬움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그밖에 사적이거나 공적인 모임에서 대중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심지어 부부간에서도. 본심과 감정을 감추고 내보이지 않는다.
시민배우를 넘어서 상처 받는 자기 자존감을 억누르며 견딘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임을 증명하고 있는 그녀는 “나 자신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 주겠어요? 라던 희극인 고 박지선의 외침과 무게가 동일하다.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라던 선배 희극인의 모습이 오버렙 된다.
블랙코미디인 짬뽕에서 광주 5.18을 상징하는 어떤 나사못 하나하나는 극의 전체 축을 견인해 나간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총탄으로 죽기 전 시민군이 있는 도청을 향해 뛰어 나가 커피를 나르던 오미란의 시민정신, 연출 중 생략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지 못한 5.18 정신의 결여는 치명적이고 아쉬운 대목이다.
가면은 라틴어 ‘persona(페르소나, 인격)’, 영어 ‘personality(퍼스널리티)’의 어원이면서 타인에게 보이는 우리의 외적 인격이 드러나는 매력적인 통로이다. 그러니 작품 짬뽕에서 가면적 요소가 불안한 것은 배우들의 동선을 뒷받침하는 배경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극장, 소품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무대미술, 음향 연출이 좀 더 뒷받침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시민 배우들의 약점을 커버하기에 과정과 결과의 약점들은 제법 취약했고 아쉬운 대목들이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우리가 가면을 쓰는 이유다. 실제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연극(희극)의 목적은 약점을 가리는 것,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정서(fell)의 갑옷이랄까. 사람에 따라 정서의 생김 또한 제각각이듯 배우의 갑옷 역시 마찬가지이다.
“20대 여성이 화장을 못 해서 더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20대 개그맨이 분장을 못 해서 더 웃길 수 없다는 것에 슬픔을 느끼는 진정한 개그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던 고 박지선 희극인의 외침이 오버랩 된다.
이런 배우들의 결핍이 횟수를 더해 갈수록 배우들 스스로는 물론 극장을 찾는 시민들을 치유하고 힐링시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희극적인 배우들이 시민들 주변에 있다면 시민들 또한 덩달아 가면을 벗고 무장해제 될 것이다.
게다가 유쾌하고 잘 웃기기까지 하는 이웃시민 오미란은 분명 5.18 이전 광주시민의 모습일 것이다. 그 역을 맡은 제주 시민배우 김미경은 향후 제주 4.3의 주역으로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NSP통신 이재정 기자 jejugraphie@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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