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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1973년 첫 도입 보잉747 탄생 50년 맞아

NSP통신, 강은태 기자, 2018-10-04 15:42 KRD7
#대한항공(003490) #보잉747
NSP통신-사진은 1973년 5월 16일, 보잉 747점보기의 태평양 노선 취항식에서 한진그룹 조중훈(왼쪽 네번째) 창업주가 정∙재계 인사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는 모습. (대한항공)
사진은 1973년 5월 16일, 보잉 747점보기의 태평양 노선 취항식에서 한진그룹 조중훈(왼쪽 네번째) 창업주가 정∙재계 인사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는 모습. (대한항공)

(서울=NSP통신) 강은태 기자 = 점보 제트기(Jumbo Jet), 하늘의 여왕(Queen of the Skies)이라는 애칭으로 세계 항공시장의 사랑을 받아 온 보잉747 항공기가 세상에 공개된 지 50주년을 맞았다.

1968년 9월 30일 시애틀에서 첫 선을 보인 보잉747 항공기는, 1969년 2월 처녀비행 이후 1970년 1월 22일 팬암 항공의 뉴욕발 런던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갔다.

이후 보잉747 항공기는 세계 항공시장의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항공 산업뿐만 아니라 엔진 산업, 연관 시설 개발, 관광 산업 등 관련되어 있던 모든 산업군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내는 동력으로 작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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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003490)이 1973년 첫 번째 보잉747 항공기를 도입한 이후 대한민국 항공 산업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그 해 대한항공이 보잉747 항공기에 대규모 승객을 태우고 태평양을 건넌 후 대한민국의 항공 발전도 높이 날아올랐다.

◆보잉747, 세계 항공 산업 도약 시킨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1960년대에 베트남 전 중이던 미국 공군은 대형 화물을 싣고 비행할 수 있는 크고 성능이 뛰어난 항공기가 필요했다. 여기에 더해 당시 외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일반 여객 수요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 같이 수요가 증가하는 분위기 속에서 팬암 항공은 당시 최신 모델이던 보잉707 항공기보다 규모가 두 배인 항공기를 제작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고 이를 보잉사가 받아들이면서 보잉747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기존 공장에서는 보잉747 크기의 항공기 제작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보잉사는 에버렛(Everett)에 새 공장을 만들었는데 이 공장은 아직까지 세계 최대의 밀폐 형 건물로 남아 있다.

보잉747은 최초의 와이드바디(Wide-body) 항공기다. 객실 내 통로가 2개가 있는 대형 항공기라는 의미다. 1968년 첫 탄생 이후 2000년대 중반 에어버스사의 A380 항공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큰 여객기로 명성을 떨쳐왔다.

2개의 통로와 높은 천장은 탑승객들에게 다른 소형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항공사에게는 수백 명의 승객을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최적의 항공기인 셈이었다.

달라진 풍경은 항공기 기내만은 아니었다. 공항도 보잉747에 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형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게 활주로를 재정비 하는 것은 물론 많은 승객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만큼 터미널, 탑승수속카운터, 수하물 수취대, 라운지, 편의시설 등 각종 공항 시설도 함께 달라졌고 높아지고 더 커진 항공기에 걸맞게 각종 지상 조업 시설 또한 그에 맞춰 개발됐다.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진보도 이뤄졌다. 더 커진 항공기를 움직이고 띄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엔진으로는 부족했기 때문. 따라서 보잉747 항공기가 움직이고 추진력을 받기 위한 수준의 엔진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연관 산업들도 함께 춤추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을 한꺼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보잉747 항공기의 특징 때문에 비용 절감이 가능하게 됐고, 이로 인해 항공권 가격이 합리적으로 형성되면서 항공 여행은 일상화될 수 있었다. 여행 산업에까지 그 효과가 확장됐다는 의미다.

NSP통신-사진은 1995년 3월 24일, 100번째 대한항공이 보유하게 된 항공기인 보잉 747-400을 배경으로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대한항공)
사진은 1995년 3월 24일, 100번째 대한항공이 보유하게 된 항공기인 보잉 747-400을 배경으로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대한항공)

◆대한항공 역사와 궤를 같이 한 보잉747... 미래 내다 본 투자 평가 받아

전 세계 항공 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어낸 보잉747은 대한민국 항공 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보잉747이 첫 선을 보인 1968년 이후 폭 넓은 노선망과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선진 항공사들만이 이 항공기를 도입해 운영할 수 있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항공사의 위상이 보잉747 보유 여부로 판가름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당시 변방 국가에서 보잉747 항공기를 구매하게 된다.

1969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故조중훈 한진 그룹 창업주는 그 이듬해인 1970년 ‘보잉747 도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타당성을 검토했다. 그리고 보잉사와 보잉747 2대를 구매하는 가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두 대에 7000만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끊임없이 반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훈 창업주는 장기적으로 대한항공의 향후 사활이 걸린 중요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972년 9월 5일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조중훈 창업주의 자서전에 따르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할 당시부터 3년 내에 보잉747 항공기 날개에 태극마크를 그려 넣겠다고 다짐했고 그 다짐을 지켜졌다.

보잉747 1번 기는 미국 시애틀을 출발해 1973년 5월 2일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2주 후인 1973년 5월 16일 태평양 노선에 정식 투입됐고 당시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요인과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 등 800여명이 참석해 성대한 행사가 진행됐다.

이듬해인 1974년 9월에는 세계 최초로 보잉747 점보기를 화물 노선에 투입했고 세계 항공화물 시장을 주름잡게 될 대한항공의 뜻 깊은 첫 걸음이었다.

NSP통신-사진은 보잉747-8i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배경으로 이륙하는 모습. (대한항공)
사진은 보잉747-8i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배경으로 이륙하는 모습. (대한항공)

한편 8만7000시간, 1만9000회를 운항한 대한항공의 첫 보잉747 점보기는 누적 승객 600만명과 누적 화물 90만 톤을 싣고 전 세계의 하늘을 누빈 후 지난 1998년 퇴역했다.

NSP통신/NSP TV 강은태 기자, keepwatch@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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