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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제

‘시인이 된 법의학자’ 화제

NSP통신, 김용재 기자, 2014-11-20 11:29 KRD7
#조선대 #조선대 김윤신 교수

조선대 의학과 김윤신 교수, 첫 번째 시집 ‘3일간의 진실’ 출간

NSP통신-조선대 의학과 김윤신 교수. (조선대)
조선대 의학과 김윤신 교수. (조선대)

(광주=NSP통신 김용재 기자) = “세월을 담은 주름살처럼/늘어만 가는 주검들//죽은 자의 묵묵한 사연과/주검 앞에 칼을 쥐고 선 자의 내연(內緣)”(‘다시 부검실에서’ 1, 2연)

평생 시체와 씨름하며 죽음의 비밀을 밝혀온 법의학자가 시집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첫 번째 시집 ‘3일간의 진실’(코리아기획 刊)을 펴내며 “나는 부검실에서/인생을 배웠다”고 고백하는 김윤신 조선대 (52·의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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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로 나뉘어 총 80편이 실린 김 교수의 표제작 ‘3일간의 진실’은 지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부검한 황적준 고려대 명예교수의 정년퇴임에 바치는 헌시.

“그날, 죽은 자의 가슴을 열어/본 것을 보았다 말하였을 따름이나/불의한 권력의 심장이 꿰뚫렸습니다/ 정의를 열변(熱辯)함도 아니었으나/압제의 갑문이 무너졌습니다.(중략) 그저 본 것을 보았다 한 그 한마디에/천지는 요동치고/어두운 권력의 하수인은 끌어내져 옥에 갇히니/3일간의 진실 투쟁은 한 인간의 고뇌였습니다.(하략)”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해에 조선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정부의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힌 황적준 교수에게 감명을 받았다.

NSP통신-김윤신 조선대 교수의 첫 시집 3일간의 진실. (조선대)
김윤신 조선대 교수의 첫 시집 ‘3일간의 진실’. (조선대)

병리학을 전공한 그는 법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황 교수를 찾아가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10년 6개월 동안 근무하며 그는 무수한 시체와 대면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사인을 밝히는 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 때만 해도 법의학자가 20여 명에 불과해 매일 많게는 10여 건의 부검을 했다.

의과대학 재학 시절 문학동아리 ‘동맥’에서 활동했던 그는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틈틈이 시를 썼다.

장성군 서삼면 대덕리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부분원에서 근무할 때 ‘서삼(西三) 가는 길’이라는 작품을 액자에 넣어 벽에 붙여두었다.

“아침 햇살이 세상을 비추기도 전에/차가운 해부대 위에/벗은 몸으로 누우신 당신,/우리 날마다 그대 영혼을 만나/버림받은 당신의 감추인 사연을 듣고/모진 삶의 이면을 보지요.// 그대 속삭임 듣고자/우리 그대 만큼 낮아져야 하리니/그대 몸을 닦음으로/우리 마음이 닦이고/그대 피를 씻음으로/우리 욕심 맑아지기에/영혼이 떠나버린 그대 육신 위에/우리 땀을 쏟으러/날마다 낙엽 뒹구는 서삼 길을 밟습니다.”

시를 본 수사관이나 유족들이 그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하는 것을 느꼈다.

처음 국과수에 근무하면서 힘들었을 때 썼던 작품이라서 지금도 가장 애착이 간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

김 교수는 10년 넘게 몸담았던 국과수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2009년 모교에 부임했다.

“서삼에서 서석으로/부검실에서 연구실로//귀향이라도 좋으리/귀농이라도 좋으리/십년 반을 밭 갈고/오년 반을 씨뿌렸네”(‘귀거래’)라고 노래하는 그는 “모교는 내 고향”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모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을 시작한 그는 문병란 시인이 운영하는 서은문학회에 가입해 2년 동안 열심히 시를 공부했다.

지난 해에는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했고, 올 해 드디어 시집을 냈다.

김 교수는 “시를 쓰면 제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또 시는 누군가를 향한 메시지로 잘 쓴 시는 큰 힘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시작 활동의 배경을 밝혔다.

오랜 소망을 이룬 그는 의학과 문학의 행복한 결합을 꿈꾸고 있다.

오는 2016년에 의예과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개설될 예정인 ‘의료인문학’ 강좌의 책임교수를 맡아 이끌어갈 계획이다.

“죽음이란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죽음의 진실을 밝혀 낼 누군가의 헌신이 중요한 데 그런 역할이 법의학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의학자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 같은 존재라고 믿습니다. 의학도들이 전공을 정할 때 시류를 쫓는 경우가 많지만 법의학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입니다”.

첫 시집 서문에서 “육친을 기르듯 애끓는 마음으로 시를 품고 싶었건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미숙한 구석이 적잖다. 시를 가다듬듯 삶을 다독이고, 시인의 마음으로 가녀린 것들을 보듬으리라”고 술회한 그는 “시집이 몇 권이나 팔릴 지 모르지만 팔린 만큼 평생 저에게 울타리가 되어준 모교에 발전기금으로 내겠다”며 끝없는 모교 사랑을 내비쳤다.

한편 김 교수는 조선대 의과대학에서 병리학을 전공하고 고려대에서 법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고려대 의사법학연구소 의료법학연구과정을 수료했다. 이어 지난 1998년부터 2009년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재직하며 영국 글라스고 대학교 법의학과에서 방문 연수했으며 법의학과장, 서부분소장을 역임했다.

nsp2549@nspna.com, 김용재 기자(NS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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