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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역사문화박물관, ‘국민회보’... ‘조선독립신문’ 등사본 ‘국내 최초 공개’

NSP통신, 권민수 기자, 2019-06-03 16:08 KR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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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사본, 민족대표 33인 조선독립선언서 발표·구인... 비폭력 운동 방침 실려

NSP통신-영천 용화사 대적광전 법당 탁자에서 나온 1564(가정28)년 유점사본 선문촬요. (영천역사문화박물관)
영천 용화사 대적광전 법당 탁자에서 나온 1564(가정28)년 유점사본 선문촬요. (영천역사문화박물관)

(경북=NSP통신) 권민수 기자 = 영천역사문화박물관은 1919년 3월 1일 발행한 ‘조선독립신문 창간호’와 같은 날짜에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민회보와 조선독립신문‘이 함께 기록된 등사본의 지하신문 1점을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이 자료는 대한불교조계종 용화사 법당의 탁자 안 고서 속에서 발견돼 영천역사문화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이 등사본 신문은 민족대표 33인 등이 태화관에서 조선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종로경찰서에 구인됐다는 내용과 2000만 민족이 마지막 1인까지 남게 되더라도 절대 난폭하거나 파괴적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비폭력 운동 방침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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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선독립신문과 같은 면에 실려 있는 등사본 ‘국민회보’는 발행일자가 적혀있지 않은 발행처 미상의 지하신문이다.

내용은 ‘아태행태상황제폐하(我太行太上皇帝陛下) 붕어(崩御)에 원인(原因)’이라는 제목하에 일본에 의한 고종의 독살설을 제기하고 귀족대표 이완용 등 6인을 지목해 ‘가칭선일동화(假称鮮日同和)함을 증명(證明)한 역적(逆賊)들’이라 쓴 내용을 담고 있다.

기사내용을 분석해 보면 존재 사실이 기록으로만 전해져 왔던 국민회보 1919년 3월 1일자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조선독립신문’은 당시 이종일·이종린·윤익선씨 등이 주도해 창간했다. 창간호는 활판인쇄로 발행됐으나 이번에 공개한 영천역사문화박물관소장본은 등사판으로 발행한 것으로 보아 3.1운동 시점에서 후일에 등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크기는 세로 22.0㎝, 가로 31.4㎝로 A4 용지 크기보다 조금 큰 사이즈이며 종이는 두 장을 이어 붙인 것으로 국한문이 혼용되어 등사됐다.

NSP통신-영천 용화사 법당에서 나온 조선선종경북포교당 직인과 주소인. (영천역사문화박물관)
영천 용화사 법당에서 나온 조선선종경북포교당 직인과 주소인. (영천역사문화박물관)

지난 2019년 2월 26일 부산박물관이 최근에 조선독립신문 창간호와 국민회보 등 2점을 기증받아 3월 1일부터 전시할 계획이라 보도된 바 있다.

부산박물관이 소개한 국민회보는 필사본으로 영천역사박물관 소장 등사본과는 차이가 있다. 영천역사문화박물관 소장본의 가치는 1919년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가 한 장의 종이에 등사되어 배포된 것으로는 국내에서는 최초라 볼 수 있다.

조선독립신문은 1919년 3월1일 발행된 인쇄물이다. 조선독립신문사가 서울에 있는 천도교 인쇄소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와 함께 인쇄해 이날 배포했다. 창간호는 활판 인쇄로 발행됐으나 이튿날 인쇄된 제2호부터는 등사판으로 발행됐다.

영천 야사동 용화사 대적광전 건물의 원소재지는 대구시 중구 남산동 932-35에 있는 대구 동화사 대구포교당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선종경북포교당(朝鮮禪宗慶北布敎堂)이라 등록된 사찰로 역사적인 의미가 크며 대구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역사적 장소이다.

이 현재 용화사 법당은 1982년 대구에서 영천으로 이건 될 때 이 법당의 불단에서 나온 1545(가정28)년 유점사개간 ‘선문염송집’에 조선선종경북포교당(朝鮮禪宗慶北布敎堂) 사찰직인과 소장인 대구부 덕산정 62번지 2호 조선선종경북포교당의 압인이 있어 건물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등사본 국민회보와 조선독립신문도 이 책과 함께 숨겨져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또한 독립만세운동 참가자들이 1919년 3월 29일 반월당 언덕에 있는 이 건물에 모였고 거기서 이튿날 만세운동에 쓸 태극기를 만들었다.

1919년 3월 30일 동화사 지방학림 학생들이 덕산정 시장 만세시위를 준비하기 위해 3월 28일 허선일(許善一, 23세), 권청학(權淸學, 21세), 김종만(金鍾萬, 21세), 이기윤(李起胤, 21세), 김문옥(金文玉, 20세), 김윤섭(金潤燮, 20세), 이보식(李普湜, 20세), 이성근(李成根, 19세), 박창호(朴昌鎬, 19세) 등 동화사 학림 학생들은 이곳에 모여 만세운동 동참을 결의했다.

이들은 3월 30일 오후 2시 남문 밖 시장에서 수많은 장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켰으나 일본 경찰의 출동으로 제지를 당하였고 주동자들은 붙잡혔다.

지방학림 학승 권청학·김문옥 등 9명은 재판에서 10월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룬 역사적인 사건의 전말과 3.1독립운동의 정신이 담겨있는 법당으로 현재 영천시 야사동에 소재하고 있다.

NSP통신 권민수 기자 kwun5104@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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