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NSP통신) 임성수 기자 = 상법 개정 추진과 맞물려 기업공시 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 투자업계는 현행 공시 체계가 이사회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과 책임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보 비대칭 해소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기업 측은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장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단계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논의는 2026년 1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상법 개정에 따른 기업공시 개편 방안’ 토론회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5년 제1·2차 상법 개정을 통해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3%룰, 분리선출, 독립이사 비율 확대, 소수주주권 공시 강화 등이 추진될 예정”이라며 “2026년은 자본시장 환경 변화와 맞물려 상장회사 지배구조와 경영권 분쟁 측면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홍콩 IR 활동 과정에서 한국 공시제도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직접 확인했다”며 “신뢰 가능한 공시 체계 구축이 자본시장 선진화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안심할 수 있는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공시제도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적이 이어지는 만큼 공시 개선이 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현행 기업공시 제도가 주주이익보호의 역할을 다하는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투자·학계, 상법 개정안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 해소’

학계와 투자업계는 공시 개편의 핵심 과제로 ‘정보 비대칭 해소’를 지목했다.
국내 기업공시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상법 개정을 계기로 본격적인 틀을 갖췄고 이후 전자공시시스템(DART) 도입과 공정공시 제도 시행 등을 통해 제도적 기반이 지속적으로 보완돼 왔다. 다만 제도 정비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장 신뢰 회복과 투자 환경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는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는 정보 비대칭성”이라며 “경영진과 이사회가 보유한 정보와 투자자가 인지하는 정보의 격차가 기회주의적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을 상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 의사결정 과정이 투자자에게 보다 충실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도 구체 사례를 들어 현행 공시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회장은 “한화그룹의 분할 발표 공시를 보면 주주이익추구의무가 실제로 이행됐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며 “기업 지배구조 전반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공시 영역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 시각에서도 유사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데이비드 리 레드우드 피크 홍콩 MD는 “외국인 투자자 관점에서 한국 이사회는 여전히 자문기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지배주주와 사내이사의 영향력에 비해 일반주주를 위한 기능이 충분히 작동하고 있다는 확신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데이비드 리는 선임독립이사제 도입, 이사 전원의 주주총회 참석, 핵심 임원 보상 공시 강화 등이 투자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COE·내부거래 공시강화 요구...“자본 효율성 공개해야”

토론회에서는 자기자본비용(COE)을 중심으로 한 공시 체계 개편 필요성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윤상녕 트러스톤자산운용 ESG본부 인게이지먼트팀장은 “자본의 효율적 배치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는 COE와 ROE”라며 “경영진의 COE 이해 부족이 교환사채를 ‘금융비용이 없는 자금’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이후 부동산 투자 등 비효율적 자산 운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부거래 투명성 강화 필요성도 함께 제기됐다.
윤 팀장은 “‘일감 몰아주기’, ‘통행세 징수’, ‘사업기회 유용’ 등 사익 편취 가능성이 다수 포착되고 있다”며 “내부거래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실질적 개선은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에서는 2023년 3월 일본거래소가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자본비용 및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현을 위한 대응 방침’ 제출을 요구한 이후 COE 공시가 본격화됐다. 그 결과 2024년 1월 기준 니케이225지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5배에서 2.2배로 개선되며 기업가치 제고 효과가 나타났다는 평가다.
반면 국내 내부거래 공시 제도는 형식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상법은 내부거래에 대해 이사회 특별결의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특수관계자 거래 역시 K-IFRS 기준에 따라 거래 내역과 채권·채무 잔액 공시가 요구된다. 다만 부적절한 내부거래 발생 시 책임을 실질적으로 추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윤상녕 트러스톤자산운용 ESG본부 인게이지먼트팀장은 “상법과 회계기준은 내부거래에 대해 높은 수준의 내부통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사회 특별결의와 정보공개가 의무화돼 있음에도 상당수 중소·중견기업에서는 이사회 보고조차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영업 관련 내부거래는 공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 제10-1-2조는 자산 양수·도 거래에 대해서만 내부통제 절차 공시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10-1-3조에는 영업 내부거래에 대한 별도 공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따라 경영진·이사회 내부거래, 배당 정책, 주주권 보호, 상호주 보유 현황 등을 보다 체계적으로 공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사회 보고 누락 등으로 책임 소재가 희석되는 구조를 개선하고 이해상충 관리 체계를 공시 서식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상장사, “취지는 공감…현장 부담 고려해야”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기업공시 개편 논의와 관련해 상장사들은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장 적용 과정에서 혼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며 법적 해석 불확실성과 실무 부담을 동시에 우려했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개정 논의 출발점이 포괄적이고 광범위해 상법과 자본시장법이 충돌하는 구간에서 상장사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제도 방향이 명확해질 때까지 불안감을 안고 의사소통을 이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이 일치하는 영역은 기존과 큰 차이가 없지만 양자가 분리되는 지점에서 이사회와 경영진이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 현장의 혼란이 크다”며 “공시 규정 개정은 자본시장법과 법무부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부통제 제도 역시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사외이사가 독립이사로서 주주이익 보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 협조 체계와 제도적 지원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당국은 공시 제도 개선 과정에서 시장 영향과 실무 현실을 함께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김대일 금융감독원 기업공시국 팀장은 “공시 서식은 기업 실무 기준이자 감독당국 판단의 근간”이라며 “투자자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세부 법령 검토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최치연 금융위원회 금융시장과장은 “정부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과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며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 논의도 국회와 협력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공시 투명성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제도 도입 속도와 법 체계 간 조율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향후 입법 과정에서 시장 기대와 기업 부담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공시 개편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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