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강수인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현재 출산율 0.75가 지속되면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14일 열린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기조연설에서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5로 집계된다”며 “출산율 0.75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을 시사하는지 구체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다.
이 총재는 “현재 출산율 0.75가 지속될 경우 한국 인구는 5170만명에서 50년 후 현재의 83%인 4300만명 수준으로만 감소하며 연평균 인구감소율도 -1.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현재 2% 수준에서 2040년대 후반에는 0%대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출산율 0.75가 지속된다면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출생으로 인한 국가재정 악화와 이로 인한 포퓰리즘의 위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국가재정은 더욱 악화되며 고령층 비중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면서 연금, 의료, 돌봄 등 재정지출에 대한 청년세대의 부양부담이 급증하게 된다”며 “출산율이 0.75 수준을 유지할 경우 50년 후 국가채무 비율이 18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성장이 정체되면 분배 여건이 악화되고 세대간·계층간 갈등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기영합적인 복지정책이나 현금지원과 같은 재정정책을 추진하려는 유혹이 강해질 수 있다”며 “이는 재정만 낭비하면서 국가채무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저출생의 원인으로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에 대한 불안’을 지목했다. 그는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직업 안정성에 대한 확신이 약해졌다”며 “급등한 집값은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으며 이는 곧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으로 직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특히 ‘수도권 집중 현상’을 꼽았다. 실제 한국의 인구, GDP, 일자리 등 수도권 집중도가 50%를 넘어서는 상황이다.
이 총재는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사교육 환경과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우수한 지역으로의 이주 수요가 증가하면서 수도권 인구 집중과 서울 주택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나아가 저출생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이 총재는 “비수도권 지역에 소수의 거점도시를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소수의 지역 거점도시에 병원, 영화관, 스포츠센터 등 핵심 인프라와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수도권에 버금가는 정주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대학에 신입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되 최종 선발 결과는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비례하도록 요구하는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에서는 성적순 선발만이 가장 공정하다는 인식이 유독 강한 탓에, 지역별 비례선발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소수의 학생이 아니라 대부분의 신입생을 대상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시행해야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지역균형전형은 입학생의 약 15%에 불과해 ‘낙인효과’가 발생할 위험이 크고 비중 자체가 매우 적어 수도권 인구 집중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끝으로 이 총재는 “과거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모방하며 빠르게 따라잡던 시기에는 현재의 입시제도가 생산성을 높이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을 수 있지만 이제 우리는 기술발전의 최전선(frontier)에 서 있으며 새로운 산업을 창조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순응적인 인재를 천편일률적으로 선발하는 방식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인재들이 서로 협력하고 상호작용(interaction)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성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준을 활용해 학생들을 선발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채로운 인재를 육성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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