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NSP통신] 박선영 기자 = [시민극단 쌈 대표 장현수] 중학교 2학년 윤리시간 첫 과제물이 생각난다. 문화에 대해 조사해오라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막연한 과제 같은데 그땐 자신있게 백과사전 내용을 적어서 제출했다.
무학(無學)에 대한 보상심리 덕분인지 교육열이 남달랐던 부모님은 책이라면 다 사주셨다. 동화책, 세계명작, 위인전,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화전집, 학생대백과사전, 세계대백과사전 등 전집류는 집안 한 켠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어서 학교 과제물이라면 늘 즐거운(?) 맘으로 해 갔던 것 같다.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는 건 문화 culture의 어원이 cultivate 경작하다에서 왔으며 농경 문화를 통한 여러 관습과 의식 등이 일상적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와 굳어진 것이라는 정도이다. 후에 내가 덧붙여 생각하고 있는 개념은 문화는 삶의 양식, 즉 살아가는 모든 행위가 문화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정리하고 있다.
지금 누군가에게,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문화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간단히 무엇이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 문화는 뭔가 일상과는 거리를 두면서 지향하고 싶은 그럴듯한 삶이나 가치라고 혹시 생각이 들지 않는가. 평소에 맘껏 하진 못하지만 해보고 싶은, 페이스북에 누군가 자신의 자랑꺼리 같은 사진을 올리면 부럽다라는 댓글을 달고 싶은 그런 행동들 말이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군데 있는 부산의 문화 공연 공간들.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지방자치단체 구 별로 생기고 있는 문화회관들. 달맞이 고개 근처에 가면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크고 작은 갤러리들. 미술관. 박물관. 큰 건물들이 키 높게 솟은 센텀시티 안에 새로 생겼다는 아트홀. 그런 곳에서 매일 매일 열리는 공연과 전시, 각종 행사에도 가볍게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보다 작심해야 티켓 한 번 예약할 수 있는 그런 마음들이 더 많지 않을까
문화는 고고하고 아름답고 꼭 자랑할만한 꺼리는 아니다. 각 계층별로 시기별로, 지역별로, 나라별로, 분야별로 다양한 문화는 존재한다. 즉 옷을 입는 방식이나 먹는 음식의 기호, 죽음에 따른 남은 자들의 의식, 심지어 화장실 문화도 모두 다 다르다. 굳이 뉴욕의 패션이나 먹거리가 멋진 것이고 우리나라 변방의 시골의 옷차림과 새참꺼리가 우스운 것이라고 대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점점 사람들의 경험이 풍부해지고 정보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너나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무조건적인 선진국 문화 추종은 대세가 아니지만 지역의 서울바라보기는 더 심화돼가는 것 같다. 그건 문화의 수요 공급이 이중적으로 들어맞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단지 문화 수요가 많고(多 ) 문화 공급이 적고(少)하는 상황이 아니다.
좋은 공연을 볼 수 없는 것이 좋은 공연을 하지 않아서라는 주장에는 좋은 공연을 보려는-그 응당한 댓가를 기꺼이 지불하려는-사람들이 충분히 많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어느 쪽이 먼저냐를 따져보기 보단 악순환에서 선순환으로 들어서는 방안을 생각해보는게 좋겠다.
어려운 과제 생각하듯 딱딱한 보고서를 통해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문화는 즐기는 것이다. 내가 즐겁고 남이 즐거우면 어떤 것이든 문화의 싹이 되고 줄기가 된다. 혼자 부르면 독창이고 둘이 부르면 중창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부르면 합창이 된다. 이론으로 합창이 어떻고 제창이 어떻고 차이를 아는게 중요하진 않다는 것이다.
무용, 연극 분야는 영화나 음악회 공연보다 쉽게 접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주위에서 접하게 되는데 실제 마음을 먹으면 의외로 많은 기회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도서관에 가면 일간 신문이 비치되어 있고 목요일이나 금요일 지면을 보면 공연, 전시 소식들이 빽빽하게 나와 있다. 주말에 가까운 그즈음에는 다음 한 주 소식을 생활 문화면으로 별도 발행을 한다.
내가 우연찮게 시작한 “시민극단 쌈”도 일반인이 예술에 참여하는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3년 전 가을. 변지연 연극 배우의 강연을 듣던 쌈수다 자리에서 한 중년의 여성이 “일반인도 연극 직접 해 볼 수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싹을 틔우기 시작해서 그 해 겨울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학교 선생님, 대학생, 화가, 자동차세일즈맨, 강사, 회사원, 주부,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직업과 연령 대의 사람들이 40명 가까이 모였다.
중앙동 또따또가 트레이닝 센터에서 2주일에 한 번 꼴로 모여 신체활동과 연극의 기본기를 변지연 선생님의 지도 아래 꾸준히 연습했다. 몇 개월이 지나 단원들이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을 때 단체를 대표할 단원을 뽑는 투표를 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됐다.
대학 연극부에서 경력을 쌓은 연기가 뛰어난 교육복지사 출신의 단원과 나까지 두 사람이 후보로 나왔는데, 오히려 특징없고 평범한 내가 대표가 된 것은 어쩌면 보통 사람들의 참여가 중요시 되는 우리 시민극단 쌈의 특성에 잘 맞아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처음엔 막연한 극단이었지만 곧바로 긴장을 유발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기성극단에서 시민극단 배우 몇 명을 작품에 참여시키려고 연습장으로 찾아 온 것이다. 지원자들은 많았고 오디션을 통해 몇 사람을 선발한다고 했는데 공연은 5월초로 예정되어 있었다. 2월에 선발을 해서 3월부터 연습에 들어 갔는데 처음에 강한 의욕을 가지던 시민 배우들은 매일 이어지는 강도 높은 연습에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마침내 나를 포함해서 네 명만이 남았다.
무대 위에 선다는 것인 쉬운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당연하지만 진리같은 생각이 들었다. 재능보다는 노력이고 노력보단 즐기는 마음이 더 낫다. 노력의 결실은 무대의 막이 올라가고 난 후 긴 공연은 아니었지만 뿌듯한 마음을 안겨 주었다. 한편 그 공연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단원들은 부산국제연극제 기간에 시민참여 부문 10분연극제에 참가해서 예선을 통과하고 조화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연습실도 변변찮게 없어서 서면 지하철 역 회의실 공간을 한 달에 두 번 빌려 했는데,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그곳이 다른 사무실이 들어서면서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임시로 단원 중의 한 명인 화가의 작업실을 쓰고 있지만 안정적이지 않아서 어디로 갈까 고민 중이다. 시에서 지원하는 예술지원정책이 있지만 아직 우리에겐 그림의떡 같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열린 공간이 되고 있는 시민극단 쌈. 앞으로 우린 어디로 가게 될까?
NSP통신에 칼럼을 기고한 장현수 대표는 1970년생으로 부산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부산교대 석사과정 3학기(교육방법)에 재학중이다. 시민극단 쌈 대표(2010.12~ 현재). 부산민언련 운영위원(2012.1~현재). 장현수 대표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기,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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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NSP통신 기자, newpusanyoung@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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