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헌의 20's Navi
나도 학교폭력의 관련자다[서울=NSP통신] 도남선 기자 = 소록도에 발령받아 나병환자들에게 낙원을 만들어 주려던 조백헌 대령의 꿈은 이뤄질 수 없었다.
피해의식과 소외감에 외지인을 거부하던 환자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베풀 수록 환자들은 대령이 심어 준 ‘새 낙원’의 이상이 언젠가는 사라져버릴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소록도 주민들은 조 대령 등의 육지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고 싶었지만 제3자인 대령은 내심 환자들의 시혜자·통치자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동상이몽.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사회가 학교폭력을 규정하는 시선과 피해 가해 당사자들이 바라보는 학교폭력 역시 동상이몽이다.
대체로 학교폭력의 가시적 가해자는 등수의 권력을 지니지 못해 힘의 권력이라도 인정받으려는 학생들이다.
그렇게 보자면 청소년을 학업 성적만으로 평가하는 잣대야말로 진짜 가해자다.
실적과 수익만으로 차별하고 무시하는 데 가장 익숙한 사회가 되려 학생들더러 “폭력은 나쁘다”고 소리친다.
선을 긋고 관망하는 어른들의 지침이 청소년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청소년 문제를 대하는 통치자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야말로 학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학생들은 또한 저도 모르게 이를 체득한다.
학생들의 지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학을 위해 교육 제도를 정비한다거나 그들의 먹을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복지 논리를 위해 무상급식 논쟁을 하는 어른들.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원하는지는 듣지 않으면서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따라 오라는 어른들.
‘강압의 통치’가 폭력이라는 의식이 없는 사회 속에서 학생들이 서로에게 힘을 행사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필연이다.
나와 별반 다르지도 않으면서 내가 행하거나 겪는 폭력을 문제시하는 사회의 태도가 청소년에게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이 심각해 보이는 것은 그 어린 청소년들에게서 가장 노골적인 형태 - 주먹질과 괴롭힘 - 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이라는 것은 형태만 다를 뿐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사회적 문제다.
‘어른이니까 해결해 주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접근해야만 길이 보인다.
특히 원인은 무시한 채 결과만 막으려는 엄벌주의는 사회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폭력 가해자 개인의 행동만을 규제한다.
또 다른 폭력의 반복인 것이다.
학교폭력이 사례가 아니라 ‘현상’인 이상, 가해자들을 인간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저 현실을 도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당신들의 천국’에서 소록도를 떠났던 조백헌 대령은 다시 돌아가 환자들과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
통치자가 아니라 주민으로써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육지 사람과 소록도 사람이 결혼을 하거나 소록도의 자치 활동이 활발해지는 등 마을에 변화가 찾아왔다.
마찬가지다.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할 지를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베풀려는 태도로는 학교폭력이 없는 ‘천국’을 이룩할 수 없다.
그들의 문제가 곧 내 문제여야 한다.
학교폭력 속에 있는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의 사이에서 겪고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홍준헌 NSP통신 칼럼니스트는 경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취업신문 대구팀장을 거쳐 월간지 WANNA의 편집장으로 재직중인 20대 청춘의 대표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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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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