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살아있으라사랑하라(12)
중세 동유럽 문화의 향기 흐르는 헝가리와 체코[부산=NSP통신] 김연화 인턴기자 = 수십 년간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폐쇄되어 있던 동유럽 국가들은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1990년대 이후 개방정책이 시행된 만큼, 서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중세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고즈넉한 중세 건물과 운치 있는 자갈길, 길목으로 이어지는 음악과 예술의 향연은 이국적인 분위기와 어울려 최고의 여행을 선사한다. 동유럽 여행은 어느 곳이나 빠지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헝가리와 체코가 최고가 아닐까 싶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예술의 도시답게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다. 다뉴브 강을 끼고 양옆에 늘어선 건물들과 도시 전체를 은은하게 감싸는 음악이 여행의 흥취를 더욱 돋운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의 진주’라고 불리며 인구 2백만의 중․동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의 하나다. 다뉴브강을 가운데 두고 서쪽 지역의 ‘부다’와 동쪽의 ‘페스트’로 나뉜다.
부다는 고대로마의 군사기지로 개발되기 시작해 1361년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고, 13세기 이후 헝가리 왕들이 거주했던 왕궁을 비롯해 역사적 유물과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다. 페스트가 도시로 형성된 것은 13세기 무렵으로 중세 이후 상업과 예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두 도시는 16~17세기엔 터키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 지배하에 있었으나 1872년 합병하여 하나의 도시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주변의 작은 도시들까지 합쳐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그렇지만 헝가리도 음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리스트의 실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이지적인 용모에 세련된 무대 매너를 갖춘 리스트는 많은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당시에는 유명인에게 사인 받는 문화가 없어, 연주를 마치고 나면 리스트는 머리카락이 한웅큼 씩 뜯기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여성들은 리스트의 머리카락 한 올이나마 소중히 보관했다고 한다.
리스트는 외적인 풍모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훌륭한 작품이라면 다른 작곡가의 것이라도 개의치 않고 대중에 소개했으며 직접 연주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다페스트의 상징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되는 ‘세체니 다리’다. 밤에 불을 밝히는 전구가 멀리서 보면 사슬처럼 보인다고 해서, 세체니(사슬)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뉴브 강을 연결하는 8개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세체니다리의 야경을 보지 않으면 “진짜로 부다페스트를 구경했다고 말하지 못한다”고 할 만큼 시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가 첫 발매되었던 1935년엔 헝가리에서만 187명이 자살했다. 이 곡을 작곡한 레조 세레스 역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부다페스트 여행계획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꼭 보고 떠나기를 권한다. 여행 중 아름다운 세체니 다리를 보노라면 영화 속 건반 위를 흐르는 ‘글루미 선데이’의 애절한 피아노 음률이 귓가에 살아서 맴돌 터이다.
‘어부의 요새’를 올라가는 길가 공원에선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학생 연주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유명 관광지마다 옷을 차려입고 실력을 뽐내는 음악인들을 볼 수 있지만, 헝가리 여행만큼 음악 애호가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도 드물 것이다.
유럽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중세 유럽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였다.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휴양지는 아니지만, 마음을 여유롭게 먹고 돌아도 2~3일이면 충분할 정도로 아담한 도시다. 프라하는 중세로 시간 여행을 날아온 듯 흥밋거리들로 넘쳐난다. 한해 1억 명 이상의 배낭객과 외국인이 찾아드는 세계6대 관광도시 중 하나로, 2000년 ‘유럽문화도시’에 꼽히기도 했다.
체코는 나라 자체가 음악대학이라고 할 만큼 크고 작은 음악회가 도처에서 열린다. 특히 성당에서 열리는 음악회가 많다. 높은 천장과 실내에서 울리는 웅장한 음악은 지나가는 여행객의 발걸음을 꽁꽁 붙잡는다. 계단이나 빈자리에 빼곡히 앉은 관객들이 음악과 하나로 녹아든다.
프라하 최고의 관광지는 카를다리. 강 서쪽의 프라하성과 동쪽의 상인 거주지를 잇는 도시 내 최초의 다리다. 보헤미아왕 카를 4세 때(1346~1378) 건설돼 왕의 이름을 옮겨 땄다. 다리 위는 다양한 공연과 볼거리로 늘 활기차다. 악사와 화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뽐내느라 여념이 없다.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공연하는 토박이에 점자책을 읽으며 노래하는 여인, 게다가 재즈 공연까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카를다리에서 바라본 프라하성의 야경이 명물 중의 명물로 손꼽힌다. 다리 양쪽으로 성경 속 성자들의 인물상과 체코 성인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각각 15개씩 좌우로 줄지어 선 고딕 ․ 바로크 양식의 조각들이 마치 조각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지난 17세기 후반부터 250여년에 걸쳐 최고의 조각가들이 제작한 작품들이다.
구시가로 빠져나오면 광장 주변으로 각양각색의 자동차와 마차들이 있고, 나이 지긋한 재즈밴드도 만나볼 수 있다. 서기 410년, 천동설에 입각해 만들어 진 옛 시청건물 내의 ‘오를로이 천문시계’는 지금도 매 시각 종이 울리면 창문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12사도가 차례로 등장한다.
이 시계는 매시 정각이면 시계 옆 해골 인형이 한 손에 모래시계를 들고 줄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곧이어 정복을 상징하는 터키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유대인, 허영과 망상을 상징하는 거울을 든 인형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마침내 종이 울리면서 시계 상단의 조그만 창문에서 12사도가 나와 회전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명물이 된 오를르이 시계를 제작할 당시. 국왕이 똑같은 시계를 다시는 만들지 못하도록 시계공의 눈을 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해맑은 종소리와 독창적인 인형, 12사도의 등장... 명작의 감동 속 가슴 한켠에 느껴지는 애절함의 원인은 아마도 그러한 장인의 비탄이 깔렸기 때문이리라.
헝가리와 체코, 큭히 부다페스트와 프라하 여행을 통해 중세 동유럽의 음악과 조각, 수백년 더께가 덮인 삶과 감성들을 되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타임머신을 통해 날아간 듯.
촬영/편집= 박재환 기자, phjduam@nspna.com
김연화 NSP통신 인턴기자, yeonhwa0802@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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