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NSP통신] 김연화 인턴기자 = 음악과 여행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마음의 풍요를 주는 점이 그렇고, 특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음악과 여행이 아닐까.
나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진 못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 고향 안동 집에는 누가 켰을지 모를 바이올린이 벽에 걸려 있었고, 모서리가 부숴 지고 낡긴 했어도 소리 하난 흠 잡을 데 없는 오르간도 한 대 있었다.
시골에선 좀체 보기 힘들었던 오르간 연주 때면 동네에서 함께 뛰놀던 소꿉친구들은 모두들 신기한 듯 감탄사를 연발했고 아무것도 모르던 코흘리개 나 역시 우쭐해하곤 했다.
가세가 기울면서 바이올린도 오르간도 모두 누구에게 팔아 넘겼는지,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져갔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그 악기가 우리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랑거리였던 것 같다.
아마도 음악에 대한 애정은 이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부산으로 와서 일하며 동시에 학교에 다니면서도 항상 음악을 가까이하려 노력했었다. 나이 들어 여행이라는 취미가 하다 더 생기고 나선 어느 것이 낫다고 저울질 할 순 없지만 둘 다 모두 생활의 일부분이 된 건 사실이다.
지금은 오지를 찾아 여행하는 게 취미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개혁, 개방의 물결을 타고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해외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단순히 관광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선진국의 유명 도시에 가서 호텔에 묵고 고급식당에서 밥 먹으며 여행하는 것은 주변에 득실대는 사람들만 달라졌을 뿐 국내여행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행에 앞서 무엇을 보고 배워올 것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저 단순한 관광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한 가지 테마를 정해서 거기에 맞춰 여행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우리라.
물론 내 경우에는 음악을 테마로 떠나는 여행을 최고로 치지만, 중세 유럽의 성당이나 아름다운 미술품, 박물관, 먹거리 등 자신이 좋아하는 거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을 듯하다.
1990년 해외여행에 처음 맛들이기 시작할 무렵 유럽으로 떠났다. 이태리 산타 체칠리아에서 플푸트를 공부하던 딸애를 만나볼 목적도 있었지만, 현대음악의 발원지인 유럽의 문화를 손수 체험해 보겠다는 생각이 더욱 컸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음악사에서 빠질 수 없는 거장들이 살았던 발자취를 따라 간다는 것은 여행의 설렘을 한층 배가시켜 주었다. 오스트리아에선 슈베르트와 모차르트, 하이든과 요한스트라우스를 만나볼 수 있고, 독일에선 베토벤과 헨델, 그리고 음악가는 아니지만 ‘문학 천재’인 괴테의 생가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음악을 테마로 한 유럽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프랑스의 파리가 아닐까 싶다. 중세 동안 화려한 궁중문화를 꽃피우다 대혁명을 지나면서 민중 속으로 깊숙이 그 문화를 심은 ‘예술의 도시’.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파리는 여전히 세계의 문화․ 예술 중심도시로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파리는 에펠탑이나 개선문, 루브르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지만 10년이 넘도록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이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당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그 지조 있고 절제된 근엄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빅토르 위고라는 대문호가 쓴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경이 되는 곳이어서 더욱 그런 인상이 짙었다.
이 대성당은 1163년 건립이 시작되어 800년이 넘도록 파리의 변화를 지켜봐왔다. ‘노트르담’이란 '우리의 어머니'란 뜻으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존칭이다.
성모를 공경하는 기운이 고조된 12세기 이후에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럽에는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의 성당이 여러 곳에 있는데, 규모가 다를 뿐 건축양식은 거의 비슷하다.
위고는 대성당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벽에 적힌 '숙명'이라는 단어를 봤다. 그때부터 이 단어가 어떻게 해서 거기 적히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만들게 되는데, 그 노력의 결과물이 <노트르담 드 파리>라고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엔 세계적인 뮤지컬이 많이 소개되지 못했다. 게다가 유럽을 방문한 1995년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뮤지컬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접해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여행 말미에 런던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보고 엄청난 스케일과 애절한 스토리에 심취하고 나선 웬만한 뮤지컬 공연은 만사 제쳐두고 보러 다녔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파리에서 초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선 이제나저제나 한국에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러던 중 2005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의 내한공연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무대세트와 조명에 익숙해서인지 너무 단순한 무대장치가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공연을 마칠 쯤엔 전율로 밀려왔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배우들의 뛰어난 노래실력과 그 뒤를 받치는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표현해내고 있었다. 노래와 춤을 함께 하는 미국이나 영국의 배우들과는 달리, 노래하는 배우와 춤추는 배우가 구분되어 음악적 완성도가 높았다.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와 심리를 그림자로 묘사하는 몇몇 장면들은 공연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프랑스 문화는 유럽문화의 중심으로, 지금도 계속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80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물랑루즈>나 뮤지컬<레 미제라블>,<오페라의 유령> 역시 프랑스를 무대로 한 작품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세계 4대 뮤지컬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작품성 면에서 그들과 견주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매혹적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세 남자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은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촬영/편집 = 오혜원 기자 dotoli5@nspna.com
내레이션 = 도남선 기자 aegookja@nspna.com
장소협찬 = 해운대 아트센터
김연화 NSP통신 인턴기자, yeonhwa0802@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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