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IP통신) = “꿈을 찾는 연극 연출가가 되고 싶다”
환경연극 연출도 또 하나의 도전
한국적인 연극이 세계적인 것 ‘더굿’ 연출
박태용 연극연출가(34)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 한양대 연극과 대학원 연극연출 전공 졸업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일제 강점기 한일 합방에 의하여 시작됐으며 그와 더블어서 한국의 근대 문화의 성격도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연극 연출가 박태용.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명성황후와 같은 뮤지컬이나 연극을 만들기 위한 꿈을 위해 지금도 밤낮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그만의 작품세계 구축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대학로 소극장 중에는 최신 시설과 제법 극장스러운 면모를 갖춘 ‘더굿씨어터’ 극장에서 기술감독으로 근무하는 있는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극장으로 출근한다. 그의 직업은 지금 기술감독 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넌버블 퍼포먼스 “더굿”의 연출 이였으며 과거 마당극 “아무도 때리지 않았다”, 코미디 연극 “진짜 고구려” 등을 연출한 그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극장의 기술 감독인 것. 일종의 미래를 위하여 현실과 잠깐의 타협인 셈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꿈인 연극 연출을 위하여 지금도 대본을 쓰고 유학을 위하여 영어공부를 하며 새벽녘에 일어나서 극장의 기술감독을 하는 등 그의 꿈을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과 감기조차 걸릴 수 없는 시간의 부족함에 한탄스러워 하며 꿈을 위하여 매진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은 한 가지 이유다. 꿈을 이룩하기 위한 것. 바로 한국적인 연극 연출가가 되기 위해서다. 박 연출의 생각은 대학로 연극은 근대화 시작과 함께 만들어진 연극 문화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인데 우리 것은 많지 않으며 서양적인 연극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매우 위험스러운 발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도 나름의 논리적 무장을 갖추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본다면 당연히 한국적인 뮤지컬을 볼 것이며 이 때 지금의 연극이나 뮤지컬은 서양의 문화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의 브로드웨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대학로에서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많지 않은 이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타와 같은 비 언어극이나 대표적인 한국적 뮤지컬인 명성왕후는 외국인들의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며 난타의 관객 중에는 많은 수가 외국인이라고 그 근거를 내세운다.
난타의 가능성은 검증됐으며 우리 것으로도 충분히 세계적인 연극이나 뮤지컬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며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로 숙명여대의 ‘가야금 합주단’ ‘판소리 뮤지컬’ 정가학회의 ‘스토리 뮤지컬’ 등이 있으며 이들의 시도들은 아름다운 것이며 나에게는 신성한 충격이며 한국의 연극이나 뮤지컬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한다. 최근 이러한 시도들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으며 대부분 젊은 연출가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어 한국의 공연계도 장르의 다양화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박태용 연출도 이러한 도전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가장 한국적인 샤머니즘인 ‘굿’과 가장 서양적인 문화 ‘브래이크 댄스’ 일명 ‘비보이’를 결합한 넌버블 퍼포먼스 ‘더굿’을 연출했다.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고 씁쓸한 웃음을 짓지만 그의 눈에는 자신감이 넘쳤으며 이런 시도들이 있을 때 우리의 연극과 뮤지컬계가 성장한다고 말한다.
최근 비보이의 유행으로 국내에서 10여개 정도의 비보이 공연이 만들어지며 거품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양적 질적 팽창을 함께 가져왔기에 종의 다양화에서 비롯된 상업예술의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특히 박 연출은 다음 작품으로 환경을 주제로 환경연극을 도전 중이다. 지금까지 환경을 주제로 연극이 성행하지 않았으며 이는 시장과 관객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약간의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환경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에 나의 또 다른 도전 과목이며 이룩해야 할 꿈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박 연출은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유학. 영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어 입에서 연발 짧은 영어를 혼잣말로 중얼 거린다. 그는 세계인에게 한국의 연극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속에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란 것이 그의 논리다. 그들의 문화와 삶을 파헤쳐보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연극을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 연출의 그러한 외고집적인 성격 탓인지 2년전 여자친구와도 이별을 고하고 지금은 도전을 위한 생각만 골몰하고 있다. 비슷한 연배 중에 성공한 연출가들을 보며 자신의 고집을 꺽고 싶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도전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비춰졌으며 그 이면에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함께 보여 졌다.
그가 이렇게 그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 풍물패에 빠져 사물놀이에 매진하면서 한국 문화의 중심에 있었으며 집안의 종교인 불교를 통하여 불교문화를 접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을 만들기 위한 모든 조건을 배웠다고 생각했으며 한양대학교 연극연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제 그에게 남겨진 과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을 만들겠다는 것. 끊임없는 도전으로 그의 성공에 왠지 모를 관심과 경외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