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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지급결제의 주역들…은행과 중앙은행은 살아남을 것인가?

NSP통신, NSP인사 기자, 2021-03-02 08:44 KRD7
#안예홍

(서울=NSP통신) NSP인사 기자 = 지급결제는 완전한 자급자족경제가 아닌 교환경제에서의 상거래의 발전과 함께 진화하여 왔다. 문명의 발생지 중 하나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던 수메르인들은 4000년 전에 곡물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곡물을 이용해 채무를 갚는 지급결제를 했다. 인류는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알기에 일정한 가치를 지닌 금 또는 은과 같은 귀금속이나 보리와 같은 곡물을 결제수단으로 지정해 사용하기도 했고 보다 더 편리성을 높이기 위하여 주화, 나아가 은행권과 같은 화폐를 만들어 사용했다.

어느 시대든 권력을 쥐고 있던 집단이 화폐를 만들어냈다. 화폐 이외의 지급수단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나 화폐와는 조금 다르다. 상인이나 화폐보관소 역할을 한 상거래 관련 집단들은 상거래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화폐보다는 화폐적 가치를 이용했고 이를 발달시켰다.

NSP통신-지급결제의 주역들 저자 안예홍
지급결제의 주역들 저자 안예홍

그리고 주화의 교환을 주업으로 삼았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환전상은 단골 고객의 주화를 보관하고 있다가 고객의 지급지시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주화를 지급하거나 이체를 통해 결제를 했으며, 17세기의 금세공업자는 고객이 맡긴 금의 보관증을 지급수단으로 하여 결제의 편의성을 도모했다. 나아가 환전상과 금세공업자로부터 발달한 은행은 고객이 맡긴 예금을 이용해 계좌이체란 방법을 통해 결제의 편리성을 도모했다.

지급결제는 화폐의 그림자
그러나 이들이 모두 지급결제의 주인공이 된 것은 아니다. 지급수단의 실제가치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 어느 한 지급수단이 화폐를 대신하여 상거래에 사용될 수 있는지는 일차적으로 지급수단의 발행주체가 얼마나 믿을 만한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지급결제를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를 고객들에게 줄 수 있을 때에만 지급결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급결제서비스업체가 될 수 있었으며, 이들이 화폐적 가치를 지닌 지급수단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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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어찌 보면 지급결제는 화폐의 그림자라고 할 수도 있다. 화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나 화폐만 있어도 존재할 수 없는 게 지급결제이다. 그래서 지급결제는 화려할 수가 없으며 지급결제의 주인공들도 화폐 또는 화폐적 가치라는 물이 잘 흘러가도록 배수관을 설치하는 배관공과 같은 역할을 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한편 지급결제가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시스템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7세기 영국에서 은행으로 발전한 금세공업자들이 다른 금세공업자가 발행한 예금증서와 약속어음 또는 수표를 받아주면서 청산과 결제가 필요하게 된 이후부터이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발달한 은행은 상거래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에 불과한 데도 오랫동안 지급결제의 핵심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 이유는 은행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필요 시에 언제든 지급결제에 쓰일 수 있는 요구불예금, 즉 이체가능한 예금을 상거래 당사자들로부터 수취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지금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중앙은행권은 단지 종잇조각에 불과할 뿐 그 안에 실질적인 가치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크게 불안해하지 않고 중앙은행권을 돈이라고 칭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300년이 조금 넘는 이전 시기에 정부로부터 화폐발행 권한을 위임받은 중앙은행이 지급결제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권한 역시 정부로부터 부여받아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지급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적 조직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은행이 고객들에게, 중앙은행이 은행들에게 열어준 결제계좌는?
은행이나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권한을 지닌 조직으로 탄생했음에도 비화폐 지급결제시스템의 중추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은행이 고객들에게 열어준 예금계좌와 중앙은행이 은행들에게 열어준 결제계좌가 있어서이다. 예금계좌에 입금되어 있는 예금을 이용하여 자금이체를 할 수 있고 수표나 어음 등의 지급수단을 결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은행예금과 중앙은행예금이다.

화폐적 가치를 이전시키는 지급결제는 기술의 발달에도 크게 영향을 받으며 진화해왔다. 현대의 지급결제에서 은행권이나 수표와 어음 등의 실물이 있는 지급수단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반면, 전자적으로 메시지만 주고받는 형태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이 아니면서도 은행과 동일한 지급결제서비스를 하는 경쟁자가 나타나 은행과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경쟁자가 정보통신회사나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 플랫폼 사업자들이다. 고객으로부터 돈을 미리 받고 그 돈을 안전하게 보관만 할 수 있으면 이들 서비스업체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지급결제망으로 활용하여 지급뿐만 아니라 결제까지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이제 은행들은 그동안 혼자만 누려왔던 달콤한 수익을 다른 사업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형편이 되었다.

은행의 독점적 지위의 붕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은행만이 아니라 은행 이외의 지급결제서비스업체까지 포함하여 이들 모두 결국 상거래의 제삼자일 뿐이다. 왜 양 당사자 간 상거래에 제삼자가 끼어드는가 하는 주장이 등장하면서 모든 제삼자는 빠지라는 주장까지 나타났다.

전자금융거래법의 개정 움직임은 잘못된 방향
지급결제에서 은행의 위치가 이전보다 약화됨에도 중앙은행의 역할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로는, 중앙은행만이 가장 안전하고 최종적인 결제자산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법정통화인 은행권을 독점적으로 발행하고 있으며 금융기관들에 중앙은행예금계좌를 개설해주어 최종결제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둘째로는, 중앙은행의 책무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통화가치안정과 금융안정인데, 금융안정은 금융시스템의 기본적인 인프라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지급결제제도의 안정적 운영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발달과 산업의 변화로 은행과 비은행 간의 구분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중앙은행의 설립 목적인 통화가치 안정과 금융안정에 필요한 효율적인 정책 수행을 위해서는 그 대상도 확대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지급결제의 역사와 국제적 추세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전자금융업자의 전자지급거래에 대하여 외부청산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 지급인과 수취인이 전자지급거래를 할 때 같은 전자금융업자를 이용하는 거래는 별도의 청산과정이 필요하지 않은 거래인데도 외부청산을 의무화하고 있고, 더더구나 그 거래내역을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의 도입은 규제와 개입의 방향이 잘못된 사례일 뿐 아니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지급결제제도 안정화 책무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에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금융부문의 디지털 혁신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의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된 한국은행법 개정 법률안이 지급결제제도의 안정화를 통한 금융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안예홍 서울대와 연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은행에서 32년간 근무했으며, 캄보디아 중앙은행에서 6년간 정책자문관을 지냈다. 최근에 ‘지급결제의 주역들’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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