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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은 정치칼럼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닮은 대한민국 정치판을 바라보며

NSP통신, NEWS, 2024-05-08 16:48 KR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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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황혼’의 시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NSP통신-나도은 정치철학박사(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나도은 정치철학박사(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서울=NSP통신) = 황혼에서 새벽까지(From Dusk Till Dawn)는 1996년 쿠엔틴 타란티노 각본,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조지 클루니와 쿠엔틴 타란티노, 하비 카이텔, 줄리엣 루이스, 셸마 헤이액 주연의 B급 액션·호러 무비다.

내용의 황당함과 잔인함으로 1996년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상영 금지될 정도로(2000년 해제) 강한 충격을 주었던 영화였다.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장면(1)에서, 망상증 살인범이자 성범죄자인 리치 게코(쿠엔틴 타란티노역)가 텍사스에 수감 중인 무자비한 냉혈한인 형 세스 게코(조지 클루니역)를 탈옥시키고 도주하는 중 강도, 강간, 살인을 일삼자 FBI가 개입했지만 제이콥(하비 카이텔역) 목사 가족을 인질로 삼아 멕시코 국경을 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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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인 ‘황혼에서 새벽까지’ 운영하는 술집 ‘Titty Twister’(국경 양쪽에 있는 가장 거칠고 가장 극악하고 가장 거친 바이커 바)에서 술을 마시며 새벽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장면(2)에서, 술기운으로 바이커들과의 충돌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흘린 피를 보고 흥분한 쇼걸들이 뱀파이어로 변신해 그들을 공격하면서 영화는 호러 무비로 돌변한다(사실 이 술집은 뱀파이어들이 인간을 피의 제물로 삼기 위해 만든 바이커 바였음)

뱀파이어들과의 밤샘 악전고투 끝에 새벽이 되자 친구들이 찾아와 술집 문을 열면서 뱀파이어들은 타죽거나 사라지게 되고 형 세스 게코와 딸 케이트만이 최후의 생존자로 남는다.

장면(3)에서, 날이 완전히 밝아지자 형 세스 게코는 자기 몫을 챙긴 뒤 홀로 남은 케이트의 동행 요청도 거부하고 자기 몫을 나눠준 뒤 각자 길을 떠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가 싶더니 갑자기 카메라는 난장판이 된 술집으로부터 Zoom-out 하면서 Bird’s eye view로 술집 뒤편의 전경을 보여주는데 이곳이 오래전부터 이런 계획된 살육이 벌어져 왔던 곳이었음을 암시해준다.

필자가 AI가 난무하는 2024년 한복판에서 18년 전에 만들어진 이런 황당 무비를 뜬금없이 거론하고 있는 것은 2017년의 대통령 탄핵과 2022년 대통령 선거 및 지방선거, 2024년 총선이 마치 이 영화가 벌이는 난장판을 그대로 모사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구체적으로 장면(1)에서 게코 형제의 난삽한 캐릭터(악질적인 범죄자로서 불통의 냉혈한과 사이코패스)는 어딘지 모르게 오늘의 행정과 입법 권력을 틀어쥔 정치인들과 닮아 보인다.

그 연유로 보면 국민의 정치적 선택권이 4년(지방선거, 총선)과 5년(대통령 선거)에 한 번씩 반복 행사되는 1인 1표(평등)의 비밀, 직접, 보통 선거로 한정돼 있고 그마저도 전혀 믿음직하지 않은 정당에서 간택된 후보들만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밥상을 뒤집어엎고 싶은 극악한 정치 현실에 최선의 선택이 아닌 최악 대신 차 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현실이 그것이다.

2022년 대선이 그랬고 2024년의 총선이 역으로 그랬다. 2017년에 대통령을 탄핵한 국민들이 당시 최선의 선택지라고 생각한 정권을 2022년 대선을 맞이해 집권 5년 만에 밀어 냈지만 최선의 선택지가 없는 극렬 혐오의 두 대상만을 선택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그나마 최악이 아닌 차 악의 후보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도 2024년 총선에서 상황의 반전은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2022년과 정반대의 선택, 즉 집권 세력을 최악으로 규정하고 당시 최악의 선택지라고 규정했던 야당을 차 악으로 다시 선택하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이로써 2024년 총선에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겨우 탄핵과 개헌저지선(200석)만을 지켰을 뿐 패스트트랙 저지(180석)와 각종 법안의 단독 통과 저지선(150석) 확보에는 실패하고 만다.

이제 집권 여당은 상임위를 일방 통과하거나 상임위를 패싱 하고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는 법안들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 요구권) 행사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 또 그마저도 2024년 7~8월에 있을 국민의힘 전당대회 기간 중 터져 나올 친 윤, 비윤 간 갈등 격화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국민의힘에서 8명 이상만 이탈하면 됨) 수도 있게 된다.

각종 특검 역시도 대통령의 거부권을 넘어 재의결될 가능성이 농후해질 것이고 반면 제1야당 대표의 사법처리는 방탄 국회로 2027년 대선까지 끌게 될 것이 자명해지면서 임기 3년을 남긴 대통령의 레임덕을 조기 가속화 시키게 될 것이 뻔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단독 175석, 범야권 192석을 차지한 거대 야당에 밝은 청사진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거대 야당을 만들어 국민은 이뻐서가 아니라 최악이 아닌 차 악을 선택한 결과였기 때문에 압도적 다수라는 숫자만을 믿고 지난 공천과정에서 드러낸 상식 밖의 모습과 저열한 정치력, 상식 이하의 후보 수준,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선출과정에서 보여준 반민주적 작태, 방약무도(傍若無道)와 후안무치(厚顔無恥) 그리고 변하지 않는 내로남불 들로 2~3년 뒤 국민으로부터 다시 최악의 선택지로 버려질지 모를 일이다.

2024년의 대한민국은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세대와 성, 지역과 경제적 수준, 정치적 성향 등 각종 지표별로 새로운 변종 출현과 같은 도발적인 의외성과 모호성을 던져주고 있다.

지역별로는 충청권까지 포집한 거대 수도권의 등장과 세대 포위론 또는 세대 포획론에서 주장하듯 새로운 세대로서 20대(한류 문화 영향권의 신세대)와 60대(50대의 세대 이전분)가 갖고 있는 의외성과 모호성이 전통적 ‘-빠’ 집단과 팬덤 현상이 결합 돼 새로운 정치적 팬덤 그룹(예, 개 딸과 양아들 등)으로 탄생하게 되고 이들의 엽기적 행각들로 인해 20~30%가 넘는 중도층(중간층)이 대거 양산됨으로써 정당공천으로 왜곡 돼진 국민의 정치적 선택권을 비극적으로 결말짓고 있다.

특히나 새롭게 생성된 정치적 팬덤 그룹이 기존 정치권에 미치는 온갖 악영향의 행태는 영화 속 피의 향연을 즐기는 뱀파이어들의 집단 광기와 같아 보인다. 그들의 집단 광란이 황혼에서 시작되어 게코 형제와 목사 가족 모두를 유린하고 새벽이 돼서야 둘(형 세스 게코와 목사 딸 케이트)만 남기고 새벽 햇살에 사라진다.

하지만 영화 말미 에 카메라가 보여주고 있는 술집의 전경은 어젯밤의 광란과 참사가 오랜동안 반복적이었던 사건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국민을 인질로 공정과 정의의 추적을 따돌리고 ‘상식’의 국경을 넘어 밀입국해 온 정치적 변종들이 좀비 같은 뱀파이어들과 같은 정치적 팬덤 그룹들에게 어떻게 유린 되고 감염되고 괴멸되어가는 지를 은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들을 닮은 대한민국의 정치적 팬덤 그룹의 집단광기가 4월의 총선 공천과정에서 어떤 광란의 모습으로 드러났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치 현장에서 어떤 정치적 변종으로 행세하고 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줬다.

최소한의 정치적 선택권을 제한당한 국민들이 최악이 아닌 차 악의 선택으로 압도적으로 총선을 승리하게 된 거대 야당은 국회 개원도 하기 전부터 국회의장의 편중성, 친명 원내대표를 사실상 단독 추대(단독출마와 찬반투표) 그리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제 법률의 재상정과 특검 밀어붙이기, 22대 국회 원 구성 일방독주 등의 폭거를 무한 재생하고 있다.

이들과 닮아 보이는 좀비(Zombie)와 뱀파이어(Vampire)는 둘 다 죽은 자이자 살아있는 시체로 불리 운다. 존재(存在) 자체가 ‘결핍(缺乏)’이고 그 결핍 해소를 위한 욕망이 탐식이나 흡혈로 표현되는 집단 광기이고 욕구 해소를 위한 광란의 사투는 전염(傳染)과 감염(感染)이라는 좀비 아포칼립스(대재앙, Apocalypse)를 결과로 한다.

이 아포칼립스를 마주하는 배경으로 ‘황혼(黃昏/ Dusk, Twilight)’ 설정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황혼은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무렵을 말한다. 옅게 보이는 햇빛을 薄明(박명), 황혼을 저녁 박명, 여명(黎明)을 아침 박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해가 뜨거나 질 무렵 붉게 보이는 하늘을 노을이라 하는데 이 영화의 제목인 Dusk는 Twilight보다 더 어두울 때 쓴다.

‘박명종’이 Dusk, ‘박명’은 Twilight다. 프랑스에서는 이 ‘황혼’을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고 부른다.

밤이 다가오는 푸르스름한 색과 낮에 다가오는 불그스름한 색이 만나 저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 사이로 내게 반갑게 다가오는 개인지, 나를 사냥감으로 보고 달려드는 늑대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시간대로 본다.

일본에서는 황혼을 사람·살아있는 것의 시간인 낮, 즉 황(黄)과 온갖 귀신과 도깨비·죽음의 시간인 밤, 즉 혼(昏)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온갖 신이나 요사스러운 것들이 돌아다니는 시간대라 보았다.

이렇게 신과 인간의 세계가 구분되지 않는다든지, 늑대와 개의 시간이 구별되지 않는 대혼돈의 황혼 녘에 살아있는 시체들과의 목숨을 건 밤샘 사투가 벌어지고 이런 존재들과 밤샘 혈투 끝에 살아남은 자들과 새벽이 되자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 자기 길로 떠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오늘에 오버 랩 되면서 지난 밤의 승자는 과연 누구였고 설사 자신이 ‘승자’라 할지라도 그 ‘황혼의 핏빛 기억’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와 졌겠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에 개와 늑대의 시간을 벗어난 새벽에 감독이 새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술집 뒤편의 모습은 오늘 하루의 사건이 아닌, 지난 시간 동안 수없이 반복되어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복될지도 모르는 영속의 사건 속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메시지를 오늘의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지난 22대 총선의 의미 없는 각축을 보면서 대한민국호가 지금 ‘황혼’의 시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개와 늑대의 시간’에 머물러 우리 스스로 개인지 늑대인지를 구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벽을 기다리며 좀비 아포칼립스를 맞아 사투를 벌이면서도 황혼은 지나가고 있는지 새벽은 오고 있는지 설사 모든 악몽을 떨구고 새로운 길 떠나는 우리가 혹 감염자는 아닌지 또 전염자는 아닌지를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이 질문을 정치권, 국민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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