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NSP통신) 염공료 기자 = 은행이 익어가는 냄새가 길을 따라 오르는 부석사는 2년 전 가을에도 왔던 곳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일까 부석사의 범종루 앞에 서서 부석사를 올려다보던 기억이 강하게 남았다. 다시금 찾은 부석사의 입구에 도착하니 올라가는 길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난다.
부석사를 가는 길은 작은 자갈이 깔려 있는 길이다. 조금 발리 걸으려 하면 발끝에 부딪치는 자갈 때문에 발길이 멈춘다.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길을 불편하다 느낄 수 있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 가기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시 천천히 걸으며 생각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은행나무 길을 지나 올라온 부석사 천왕문이다. 양쪽에 사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고 보고 있지만 자갈길을 걸으며 반성의 시간을 갖었다면 무사통과가 아닐까.
천왕문의 문턱은 마치 활이 굽어진 듯 굵은 나무문턱이 배를 아래로 불린 채 휘어져 있다. 문사이로 보이는 범종루는 아래 계단을 올라 안양루 아래 계단을 오르면 부석사 무량수전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기 어렵다면 천왕문의 오른쪽 길을오르면 된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 대사(義相大師)가 왕명에 의해 창건되었다. 공민왕 7년(1358) 왜구의 침입 때 불에 타 고려 우왕 2년(1376)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다시 고쳐지었으나 조선 광해군3년(1611)에 폭풍에 건물 일부가 파괴되어 복구 하였다. 1916년 해체, 수리 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외척의 침입이 많았던 우리나라는 백성들뿐 아니라 문화재나 사찰들이 많은 수난을 받았다.
여러 개의 계단을 올라 바라보는 무량수전 모습이다. 마치 한 마리의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듯 한 모습이다. 수수하지만 힘 있게 뻗은 지붕에서 무량수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두 번째로 오래된 건축물이다. 첫 번째가 경북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 두 번째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세 번째가 충남 예산의 수덕사 대웅전이라 한다. 부석사는 서산 부석사와 영주 부석사가 있다. 두 곳 모두 의상 대사(義相大師)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영주 부석사의 뜬 돌은 의상 대사(義相大師)가 당나라에서 공부할 때 그를 연모하던 선묘(善妙)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의상 대사께 사랑을 고백했지만 거절을 당했다.
의상 대사가 10년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두가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버렸다. 선묘(善妙)는 바다에 몸을 던져 의상 대사의 가는 길을 돌봤다 한다. 의상 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 하자 이교도들의 반대가 많았다. 이를 본 선묘 신용(神龍)이 나타나 돌을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절일 짓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돌이 바로 부석이다. 부석은 무량수전 왼쪽에 있다. 서산 부석사에도 뜬 돌이 있다. 그곳은 의상 대사가 선묘(善妙)를 위로하기 위해 절을 지으려 하자 도둑들이 침입하여 매번 허물어지게 되었다. 이때 선묘용신이 돌을 들어 빙글빙글 돌려 도둑을 몰아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곳 모두 못다 이른 사랑에 대한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선묘(善妙)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의상 대사(義相大師)의 굽히지 않은 기상을 생각하며 무량수전을 돌아보니 그 모습이 더 애틋하고 멋스럽다. 부석사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옆 사과밭의 사과는 더욱 붉어지기 시작했다. 페스트푸드 같은 우리의 삶을 조금은 느린 모습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입장료는 어른 1,200원, 청소년군인 1,000원, 어린이 800원이다.
NSP통신/NSP TV 염공료 기자, ygr632@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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