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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건웅의법그리고자유

주먹을 쓰려면 협객이 되라…조폭 역사를 돌아보며

NSP통신, 염건웅, 2012-01-19 16:05 KRD7
#염건웅 #법그리고자유 #조폭 #조직폭력배
NSP통신

[서울=NSP통신] 염건웅 = 인류는 최초 소규모 단위로 먹이를 찾아다니고, 맹수와 추위,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느 날 불을 발견한 인류는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식생활을 채집에 의존하던 형태에서 사냥과 농사를 짓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류는 맹수의 위협과 다른 집단의 위협에 살아남고자, 소규모 부족에서 대규모 부족형태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대규모 부족집단이 형성된 후 도둑질, 살인, 강도, 강간 등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범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문명은 부족의 규칙과 규범을 만들었으며, 문명이 더 진화되면서 법(法 )이라는 최상위 규칙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법은 그 문명에 속해있으면 꼭 지켜야만 하는 의무이며, 지키지 않을 때 처벌이 수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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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로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한 것은 문명인이라면 법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지킬 의무가 있다고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법이 없다면, 지켜야할 규칙이 없다면 가장 주먹이 센자가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는 것이 이치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분명 보이는 규칙과 보이지 않는 질서에 의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법을 지켜야 할 문명의 나라 대한민국은 2012년, 각종 폭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법이 있고, 규칙이 있고, 규범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끊이지 않는 폭력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더불어 10대들의 폭력범죄는 도를 넘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칼럼 ‘조폭공화국 대한민국’과 ‘조폭수준 학교폭력 근본적인 대책필요’에서 최근 폭력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루어졌기 때문에 본 칼럼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해온 조폭의 역사에 대해 다뤄보고 주먹의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대한민국 조직폭력배 계보 제1기 일제시대의 주먹

대한민국의 조폭의 계보는 보통 3기로 나누는데 제1기는 일제 시대의 주먹으로 이들은 명분과 대의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2기는 6·25이후로 정치적 사건과 연계되면서 이들은 정치깡패의 성향을 나타냈습니다.

조양은과 김태촌으로 대변되는 3기는 회칼을 사용하고 잔인한 보복을 일삼았습니다.

현재는 범죄와의 전쟁이후 와해된 대형조직들의 뒤를 이어 신흥조직들이 앞 다투어 세력 확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권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며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는데 한 축을 담당했고, 사회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조폭의 변천사를 통해 사회의 흐름을 알아보겠습니다.

제1기 일제시대의 주먹에는 이성순(시라소니), 김두한(잇뽕), 고희경(구마적), 엄동욱(신마적)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은 협객을 자처했습니다.

제목에서‘주먹’이란 표현을 쓴 것은 일제 시대의 주먹들은 핍박받는 민중과 삶을 같이 했기 때문입니다.

식민시대의 설움과 울분을 가슴에 품었던 그들은 의리와 명분을 중요시 여겼습니다.지금처럼 칼, 쇠파이프 등 각종 무기가 난무하거나 뒤에서 공격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1기는 크게 조선주먹과 일본주먹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조선주먹들은 이제 갓 걸음마를 걷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조직은 미미했으며, 조선주먹이 가진 이권도 신통치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일본 야쿠자들은 일본도로 중무장한데다 고급술집 등 자금줄을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주먹의 보스는 영화‘장군의 아들’에서 종로를 장악하던 하야시였습니다. 하야시는 평안도 출신으로 본명은 선우 영빈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직력과 자금력에서 월등한 일본패에 항상 밀리던 조선패가 거대조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종로 우미관극장을 주 활동무대로 활약한 김두한패의 등장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우미관패는 수표교(명동과 종로의 정계) 전투에서 일본패에 무참히 패하고 조직원들이 징병으로 끌려가면서 조직은 와해 일로를 걷기 시작했습다.

◆ 제2기 정치깡패의 등장

해방공간에서의 깡패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했습다. 항상 혼란의 시기에는 그들의 힘이 막강해진다는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이 시기 깡패들은 좌우익 대립 속에 정치와 밀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충동 정치테러사건을 비롯하여, 4·19를 촉발시켰던 고대생습격사건 등 이 시기의 주먹들은 정치인들의 하수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김두한이 대한민청 감찰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일선에 뛰어들자 주먹세계의 판도는 급격히 변했습니다.

명동과 동대문이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며 주먹계의 두 축을 형성했습니다. 명동은 만주와 이북에서 활동했던 주먹들, 이성순(시라소니), 이화룡 등이 포함돼 있었고 동대문에는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충정로 도끼사건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깡패들을 잡아넣게 되고 이 와중에 명동은 완전히 무너졌고 동대문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동대문사단이‘권력의 우산’속에서 비를 피한 것입니다.

동대문의 보스 이정재는 야망이 대단했습니다. 대권까지 노렸던 이정재는 전국대회에서 세 번 우승한 탁월한 씨름꾼이었습니다. 그의 손에 잡히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힘이 대단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자유당정권의 2인자 이기붕과 손을 잡으며 정치 판에 뛰어들게 됩니다.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 난입,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개헌 통과에 한 몫을 했던 이정재는 장충동 테러 사건(야당 발기인대회 방해 사건)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권력의 맛을 본 이정재는 경기도 이천을 기반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기붕이 이 곳에 출마를 선언하자 그와 결별하게 되고 그것이 그의 몰락을 가져 왔습니다.

이정재의 뒤를 이은 것이 임화수였습니다. 임화수는 이승만을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그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영화계의 황제로 군림하게 됐으며 동대문사단을 움직이는 일인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먹에 의한 권력은 영원할 수 없는 법입니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사정부는 이정재, 임화수 등 정치깡패들을 줄줄이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이정재, 임화수는 형장의 이슬로, 유지광은 사형 판결을 받은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아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격동의 시대에 등장했던 주먹들은 비록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이 시기는 분명 주먹의 황금시대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제3기 회칼을 사용한 잔인한 보복

군사정권은 초기 부정부패의 해소, 구악일소를 내세워 주먹을 탄압했습니다. 그러나 잡초는 밟아도 끊임없이 자라는 법인지라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지방의 깡패들이 상경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1975년 명동의 사보이 호텔에서 주먹계의 판도를 바꾸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서울 중심가를 장악하던 신상사파와 주먹계의 원로들이 모여 신년모임을 가지던 중 조양은이 이끄는 전라도파(후 양은이파)가 습격한 뒤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또 광주에서 올라온 김태촌의 서방파도 상경, 주먹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결국 양은이파와 서방파, 이동재의 OB파 등 호남 3대파가 서울의 주먹세계를 분할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정치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이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세대교체를 부르짖던 때였습니다.

주먹세계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새로운 세력이 급부상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 부산쪽에서는 일본 야쿠자 조직과 최초로 손을 잡은 국제적인 폭력조직인 칠성파가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회칼, 일본도, 쇠파이프 등 갖가지 무기들이 등장하게 되고 기습적인 공격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조폭이란 단어가 어울리도록 비겁해지고 흉포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폭과 정치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인지라 정치와의 연계는 이 시기에도 계속되었습니다.

87년 호헌철폐, 직선개헌을 내세운 김대중, 김영삼씨가 통일민주당 창당을 시작하는데 지구당 창당때 주먹패들이 방해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일명‘용팔이 사건’으로, 이 사건은 후에 5공 핵심인사 장세동(당시 안기부장)씨가 계획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밖에 94년 슬롯머신사건, 98년 한나라당 서울역집회 방해사건도 조직폭력배가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 제4기 소규모 벤처창업형태의‘조폭’

이제 새로운 시기에 맞춰 젊은 세대들이 조직폭력배로 탄생하고 있습니다.

소규모로 구성된 군소 조폭들이 대도시 유흥가를 중심으로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과거 거대‘패밀리’형태로 운영되던 폭력조직이 벤처기업 창업형태와 같이 소규모 조직으로 분화되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는 계보를 거느린 대조직은 사법기관에 노출되기가 쉽고 조직을 이끌 자금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범죄단체를 구성한 두목급에 대해서는 최고 사형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형이 선고되기 때문에 이 같은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최근 학교폭력사태에서 보듯, 10대들의 조폭 가담은 일선 학교의 불량서클을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소위 일진으로 불리우는 학생들은 학교내에서 동료학생을 상대로 금품갈취와 폭력을 행사하다 퇴학이나 정학 등을 통해 사회의 폭력조직에 진출하게 됩니다.

이들은 각 조직의 행동대원으로 시작하여 학교후배를 조직에 끌어들이게 됩니다. 이후 일정한 노하우가 쌓이면 이들은 조직에서 뛰쳐나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게 됩니다.

최근에는 몇 명만 모이면 조직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10대들이 활개를 치면서 점차 흉폭해지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인성교육을 받아야 할 10대에 힘에 의한 논리를 배우게 되면, 더 폭력적이고 잔인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조폭은 주먹 계보 대신 돈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있습니다. 한때 유행하는 조폭영화에 등장하는 '조폭 의리'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1년 말까지 경찰이 감시하는 조직폭력배는 전국적으로 220개 조직, 5451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경찰 관리 대상 조폭은 조직 체계와 강령이 있고 자금 능력이 있어 활동이 왕성하다고 판단된 조폭으로, 매년 초 경찰이 선정해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들보다 더 골치 아픈 존재가 명확한 계보도 없고 두목도 불분명한 비(非)관리 대상 조폭입니다.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 치안에서는 이들의 준동이 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상하 관계보다는 돈과 이득에 따라 소규모로 움직여 단속하기도 어렵습니다.

작년 10월 21일 인천 장례식장 앞에서 난투극을 벌인 인천 '신간석파'와 '크라운파'는 소규모 조직입니다. 이러한 소규모 조폭은 이권에 따라 수시로 뭉쳤다 흩어졌다 해 관리가 어렵습니다. 인천 조폭 패싸움은 상당히 이례적인일로 최근 조폭은 예전처럼 수백명씩 싸운다거나 하지 않고, 지능적이고 불법적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폭 조직의 양상은 1990년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 전쟁' 때 크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피 튀기는 '주먹 전쟁'을 통해 세력을 넓혀야 했고, 그러기 위해 대규모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범죄와 전쟁'으로 대부분 조직이 와해되면서 합법을 위장한 돈벌이에 눈을 돌렸습니다.

조폭들은 성인오락실, 건설업, 사채, 심지어 벤처기업 등 돈이 몰리는 곳으로 진출했습니다. 코스닥 상장 기업을 인수해 회사 자금을 빼돌리거나 주가조작에 관여하기도 하는등 무조건 돈만 쫓는 현재 조폭은 진화하고 있습니다.

◆ 불의와 싸우던 1세대 주먹의 정의로움을 기억하길

조직폭력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범죄행위입니다. 앞으로도 더 진화하고 지능화, 합법화 할 것입니다. 쉽게 돈 벌수 있는 기업형태의 조직폭력배는 10대들이 우상화하고 흡수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자라나는 청소년이 조폭영화, 조폭드라마를 보며 조폭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학교에서 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통쾌함을 느끼는 순간, 우리사회는 잘못된 길을 걷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힘에 의한 지배’원칙을 쉽게 익히고 자라나는 우리의 10대들을 바라보며, 일제식민지의 억압 속에 민중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1세대‘주먹’들을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코 주먹이 먼저인 사회는 옳지 않지만, 어쩔수 없이 사용해야 한다면, 약자를 괴롭히는 조폭보다는 불의를 보고 참지못하는 주먹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2년 대한민국은 좀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염 건 웅(廉建雄) NSP통신 칼럼리스트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경찰행정학과 졸업, 공안사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민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초빙교수,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정책비서관, 한나라당 6.2지방선거 정책특보, 한나라당 10.26재선거 공보특보를 거처 현재 한국범죄학회 이사, 경찰무술신문 논설위원, 한양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염건웅 NSP통신 , guncool@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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