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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경영권 방어론’에 투자·법·학계 반론…“개정 상법 취지 정면 위배”
(서울=NSP통신) 임성수 기자 = 법조·운용업계는 최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사주는 사실상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는 의견이 개정 상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법무부가 근거로 제시한 해외 경영권 방어 제도인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과 차등의결권 역시 해외 자본시장과 국내 기업 환경의 구조적 차이로 인해 동일한 방식 적용이 어렵다는 평가다.
최근 법무부는 주요 선진국에 도입된 경영권 방어 수단인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의무공개매수 제도 가운데 어느 하나도 국내에는 규정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업의 경영권 안정을 위한 대체 수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국회에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아울러 핵심 산업의 우량 기업을 외국계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대체 방안 역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투자·법조·학계 관계자들에게 알아보니 “해외 다수 선진 자본시장과 달리 국내는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며 “이 같은 환경에서 추가적인 경영권 방어 제도의 실익이 크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시장 관계자들은 “자사주 소각이 자본성을 훼손하는 등 기업의 운영 역량을 약화한다는 주장 역시 실제 자본의 개념을 고려한다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3차 개정 상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기업 자본금이 줄어 채권자의 빚 독촉이 이어지고 유동성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자기주식은 주주 자금으로 취득한 순간부터 이미 자기자본에서 차감되며 소각 여부와 무관하게 현금 흐름이나 재무건전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논의가 이뤄진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최 긴급좌담회는 이 회장의 인사말과 경영권 방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됐다. 이번 좌담회에는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변호사, 김규식 비스타글로벌자산운용 변호사,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가 참석해 ‘경영권 개념 재정립 및 국내 적용 필요성 검토’를 주제로 패널 토론을 진행했다.
◆운용업계, 경영권 방어 강화는 주주 충실 의무 훼손 우려…“경영권은 권리 아니다”

투자업계는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 자체가 주주 충실 의무와 충돌하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관계자들은 소수 지배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사회가 복무해 왔다는 비판 속에서 주주 충실 의무 도입을 통한 제도 개선이 진행되는 가운데 경영권 방어 장치가 추가된다면 개선세가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또한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법무부가 경영권 방어 장치 필요성의 근거로 제시한 해외 사례 역시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는 시장 구조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등의결권의 경우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가 상장 직전 한시적으로 적용받는 제도이며 상장 이후 매각·상속 과정에서 효력이 상실되는 경우가 다수라는 설명이다.
포이즌필 제도는 주주가 분산된 기업에서 특정 투자자가 약 10% 수준의 지분을 확보할 경우 기존 주주들이 주식을 시가의 15~20분의 1 수준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해 적대적 인수 주체의 부담을 키우는 방식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포이즌필을 도입한 국가 역시 사실상 미국으로 한정돼 있으며 이마저도 전제조건 아래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규식 비스타글로벌자산운용 변호사(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재계의 경영권 방어 시도는 자사주 소각 등 이사회 독립성 강화 흐름에 대한 ‘사각지대의 합법화’ 시도로 해석된다”며 “포이즌필이 기업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장치로 기능하려면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의 핵심인 지배주주의 입증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그러나 국내 판례에서는 여전히 입증 책임이 일반 주주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지배주주 책임성 강화 없이 경영권 방어 장치만 도입될 경우 개정 상법의 주주 충실 의무는 선언적 규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됐다. 법조계에서는 코스피200 상장사 가운데 93%에 평균 42% 지분을 보유한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만큼 구조적으로 적대적 인수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놨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변호사는 “국내 기업의 평균 주주총회 참석률이 75%에 달하는 상황에서 지분율 42%를 보유한 최대주주는 사실상 절대적 지배력을 가진다”며 “단순 다수결 구조에서도 50% 미만 지분으로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 전원을 선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남우 회장 역시 “저명한 행동주의 투자자인 다니엘 로브(Daniel Loeb)도 국내 재계 그룹에 투자를 진행했으나 단 한 차례도 이사회 통제권을 확보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며 “이들의 주된 목적은 경영 참여가 아닌 차익 실현에 있다”고 말했다.
◆시장 관계자, “경영권 방어보다 이사회 독립성 강화가 우선”

좌담회에 참석한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국내 자본시장의 건전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미 세습 및 지배구조 강화를 통해 경영권이 공고화된 기업을 대상으로 성과 중심의 이사회 운영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도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보다는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이사 선임 절차의 투명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규식 변호사는 “이사회가 전체 주주가 아닌 특정 오너를 위해 복무하며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던 점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라며 “이로 인해 시장 전반의 밸류에이션 하락이 이어져 온 만큼 최근 재계의 경영권 방어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도 “현재 제시되는 ‘경영권 방어’ 수단들은 어떠한 경영실패에도 경영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설계돼 향후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독단성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차등의결권 미도입으로 국내 스타트업이 나스닥(NASDAQ) 등 해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실례가 부족하다는 반론이 나왔다. 외국계 벤처 투자를 유치한 이후 엑시트 편의성을 고려해 해외 상장을 선택한 쿠팡을 제외하고 뚜렷한 후속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
천준범 변호사는 “해당 주장이 어떤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미국 시장은 자본 유동성이 풍부하고 모험자본에 대한 투자 접근성이 높아 기업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를 경영권 보호 수요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기업이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추구한 결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재계와 정치권, 투자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향후 정관 변경과 주주 충실 의무 이행 여부를 둘러싼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개정 상법 시행 이후 오는 7월과 9월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합산 3% 룰 도입을 앞두고 국내 기업들의 대응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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