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강수인 기자 = 은행권이 높은 수준의 대출금리를 유지할 ‘명분’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금리에도 대출 수요가 줄지 않아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규제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당국의 규제를 들어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던 은행권이 더 이상 댈 핑계가 사라졌다. 그동안 은행권은 가감조정금리를 대폭 내려 고객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렸다. 이에 학계 안팎에서는 은행권의 담합 의혹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지난해 10월부터 4%대 돌입…가산금리만 수십차례 올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규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만기 10년 이상, 분할상환방식) 금리를 살펴보면 지난해 1월까지 평균 4%대 금리를 유지하다 2월부터 금리가 3%대로 진입, 조금씩 하락해 5월 3.54%까지 내려갔다. 그러다 8월 금리가 3.60%로 증가 전환, 10월부터 다시 4.34%로 올라서며 4%대 시대가 다시 열렸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대출 산정 기준이 되는 ‘기준금리’에 법적비용, 위험프리미엄, 업무원가 등을 반영해 산정되는 ‘가산금리’를 더하고 ‘가감조정금리’를 뺀 값으로 산정된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은 지난해 7월 이후 총 26회에 걸쳐 가산금리 인상을 이어갔다. 5대 시중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만기 10년 이상, 분할상환방식)의 평균 가산금리를 살펴보면 지난해 1월 2.73%로 출발해 오름세를 이어가다 5월 3.01%로 올라선 후 11월까지 3%대를 기록했다.
은행이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이유는 차주의 신용위험이 높아져 연체율 혹은 고정이하여신비율이 높아지거나 시장의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둘 다 아니라면 은행이 마진을 높게 매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연체율은 각각 0.28%, 0.27%, 0.27%로 큰 변화를 찾긴 어렵다. 가계대출의 고정이하여신 즉 부실채권 비율도 같은 기간 0.184%, 0.187%, 0.186%로 미미한 변화를 기록했다.
시장금리가 내려가면서 자금 조달 부담도 덜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지난해 5월까지 3%대 후반을 기록했다가 3%대 초반으로 하락, 11월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한 이후 꾸준히 3% 아래로 떨어졌다.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주로 은행 주담대 혼합형(5년고정·주기형) 금리의 준거금리로 활용된다. 2023년 12월 18일 3.853%를 기록했으나 1년새 0.879%p 하락했다. 또 변동형 주담대 금리의 준거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 역시 꾸준히 낮아졌다.
가산금리를 조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내민 이유는 ‘금융권의 압박’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압박하며 대출 수요를 줄이고자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7월 초 임원회의에서 “성급한 금리인하 기대와 국지적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는 안정화되던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역시 “주택담보대출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과 함께 필요시 건전성 규제 강화방안도 강구하겠다”고 압박했다.
금융당국의 압박에도 대출은 오히려 폭증했다. 지난해 4, 5월 각각 5조원, 6조원 늘어났던 가계대출은 지난 8월 9조 2000억원이나 늘었다. 즉 대출 수요를 금리로 누를 수 없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 관련 학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총량 규제와 은행권의 가산금리 인상은 아무 상관이 없다”며 “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수요를 줄인다는 것인데 현재 소득이 줄고 경기는 불황이지만 주택가격은 더 오르고 있어 수요가 줄어들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금융당국은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상품을 쏟아냈다”며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올릴 때에는 그럴 만한 시장의 변화, 상황적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시기 가감조정금리 대폭 내려…학계 “담합 의심도”
특히 5대 시중은행은 가감조정금리를 큰 폭 내렸다. 가감조정금리는 은행 본점이나 영업점장 전결 조정 금리 등으로 통상 은행들이 차주에게 제공하는 ‘혜택’으로 반영된다. 즉 가감조정금리가 하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대금리 등 금융소비자 혜택이 줄어든 것으로 해석된다.
5대 시중은행의 평균 가감조정금리를 살펴보면 지난 2023년 12월 2.33%였던 가감조정금리는 지난해 6월 2.91%를 기록할 때까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7월 가감조정금리는 2.83%로 하락하기 시작해 10월엔 1.95%, 11월 1.67%까지 내려앉았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가감조정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기와 폭도 비슷하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8월 가감조정금리를 전월 대비 0.33%p, 9월엔 0.37%p 내렸다. NH농협은행은 지난 9월 전월 대비 0.26%p 인하했고 우리은행은 지난 9월 전월 대비 0.32%p 인하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9월 전월 대비 0.24%p 인하했고 하나은행은 지난해 7월 전월 대비 0.33%p 인하, 지난해 9월엔 전월 대비 0.41%p 내렸다.
은행권이 7월부터 가감조정금리를 평균 2.91%에서 조정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대출금리를 산정해보면 기존 ▲7월 3.54% ▲8월 3.60% ▲9월 3.95% ▲10월 4.35 ▲11월 4.58%로 크게 오르는 것에서 ▲7월 3.46% ▲8월 3.31% ▲9월 3.33% ▲10월 3.38% ▲11월 3.34%로 하락하는 것으로 바뀔 수 있다.
한 금융학계 연구위원은 “5대 시중은행이 동시에 가감조정금리를 줄이며 고객 혜택을 줄이지 않았으면 대출금리가 지금처럼 높지 않고 (대출)기준금리를 따라 내려갔을 것”이라며 “은행들이 경쟁할수록 가감조정금리가 올라가야 하는데 일제히 비슷한 시기에 낮춘 것을 보면 담합을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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