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최정화 기자 =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이어 최근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한 ‘전기차 공포심’까지 심화되면서 전기차 성장에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정부와 관련 기업이 나서 전기차 화재 방지 대책을 내놓고 배터리 정보와 배터리 관리 방법을 공개하고 있지만 고객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9일 ‘전기차 화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란 제목의 참고자료를 내고 배터리 화재 사고 원인과 근본 대책을 공개했다. 최근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로 인한 고객들의 막연한 불안감 해소와 함께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현대차 관계자는 해당 자료에 대해 “일부 잘못된 정보와 막연한 오해가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 확산을 부추기고 있어 명확한 사실관계를 통해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로 전기차 공포증이 심화된 가운데 정부는 지난 25일 전기차 화재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자동차 및 배터리 제조사는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고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기술력을 전파하는 등 전기차 공포 해소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 전기차 화재, 비전기차보다 30%↓
최근 전기차 화재의 언론 보도가 늘어나며 ‘전기차는 화재가 많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화재는 비전기차와 전기차 합계 매년 45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4800건에 이르는 등 하루에 약 13건 이상 발생했다.
연도별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를 기준으로 산출한 1만대당 화재 건수는 지난해 기준 비전기차는 1.86건, 전기차는 1.32건이다. 특히 전기차 화재 발생 비율은 비전기차에 비해 30% 정도 낮은 상황이라 전기차가 더 화재가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또 ‘전기차 화재는 열폭주 때문에 진압이 어렵고, 차량이 전소되어야 불이 꺼진다’는 주장도 전부 사실은 아니라고 강조다.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와 마찬가지로 여러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으며, 실제로 기타 부품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대부분의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열폭주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배터리팩은 고도의 내화성, 내열성을 갖춰 배터리 이외 요인으로 화재 발생 시 불이 쉽게 옮겨붙지 않으며, 배터리 화재의 경우에도 최신 전기차에는 열폭주 전이를 지연시키는 기술이 탑재돼 조기진압 시 화재 확산 방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실시한 ‘전기차 화재 진압 시연회’에서 조선호 경기소방재난본부장은 “전기차 화재의 초진이나 확산 차단이 내연기관 차량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며 전기차 화재 진압이 내연기관차 화재 진압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
화재 완전 진압까지 걸리는 시간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오래 걸려 피해가 크다는 것도 잘못된 사실로 봤다.
일부 전기차 화재에서 초기 진압은 단시간에 이뤄지더라도 이후 혹시 모를 배터리 화학 반응에 대비해 차량을 일정 시간 소화수조에 담가 놓거나 질식포로 덮어 모든 배터리 에너지가 소모될 때까지 관리한다. 다만 이 과정은 소방청 관리 하에 안전하게 이뤄지고 주변에 화재 피해를 확산시킬 수 없기 때문에 긴 화재 진압 시간에 대해 불안감을 가질 필요 없다는 게 현대차 측 설명이다.
이 밖에도 전기차 화재의 특성 파악 및 소방 기술의 발전에 따라 화재 진압 시간을 줄여주는 여러 화재 진압 솔루션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소방기술 솔루션 업체들은 전기차 화재 진압 시간을 10분 내외까지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 전기차 화재의 진압 시간은 점차 짧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화재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내연기관차의 연료가 연소하면서 확산되는 화재보다 더 빠르게 진화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의 열폭주를 동반해 온도가 1000도 이상으로 치솟기 때문에 내연기관차 화재보다 위험하고 피해가 크다는 주장도 사실과는 다르다고 했다. 같은 용량이라면 열량이 높은 연료를 싣고 있는 내연기관차의 화재 확산 속도가 더 빠르고 차량 외부 온도도 더 높이 오른다는 것이다.
한국방재학회는 2021년 발행한 ‘전기자동차와 가솔린자동차의 실물화재 비교 분석’ 논문에 따르면 가솔린차의 화재 확산이 더 빠르고, 외부 온도도 훨씬 높게 올라간다.
지하주차장 등 실내에서 자동차 화재가 발생한 경우 전기차, 내연기관차 등의 차량 종류와 무관하게 스프링클러의 역할도 강조했다.
한국화재소방학회가 지난 4월 발행한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 논문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작동만으로도 인접 차량으로의 화재 전이를 차단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전북 군산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해 45분만에 진화됐고, 인접 차량은 2대만 화재가 아닌 소화 활동에 따른 피해를 입는 등 화재 규모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반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경우에는 내연기관차 화재이더라도 피해 규모가 큰 것으로 확인된다.
소방청은 오는 11월 20일까지 3개월간 스프링클러 설비가 갖춰진 전국 아파트 지하주차장 중 10%를 대상으로 화재안전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며, 전기차 화재진압 전용장비 확충을 검토하고 있다.
◆ 100% 충전해도 안전…충전량 제한 근본 대책 아냐
최근 일부 지자체는 배터리 충전량(SoC) 90% 이하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출입을 허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배터리 충전량은 화재 발생과 연관성이 미미해 ‘충전량 제한’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기아 등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배터리를 100% 완전 충전해도 충분한 안전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이는 고객에게 보여지는 시스템 상의 100%가 실제로는 100%가 아니기 때문이며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BMS가 과충전을 차단하고 제어한다.
배터리 제조사와 자동차 제조사는 배터리의 내구 수명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내구 성능 마진을 두고 있으며, BMS(배터리관리시스템)가 사용 가능한 배터리 용량을 재산정하는 리밸런싱을 통해서도 추가적인 마진을 확보한다.
일반적으로 배터리 충전량은 총 열량과 비례하기 때문에 화재의 규모나 지속성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배터리 화재의 원인은 셀 자체의 제조 불량 또는 외부 충격 등에 의한 내부적 단락이 대부분이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과충전에 의한 전기차 화재는 “0건”임을 강조했다.
국내 대표 배터리 전문가인 윤원섭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도 최근 언론사 인터뷰에서 “우리가 100%라고 말하는 것은 안전까지 고려한 수명”이라며 “배터리를 100% 충전하면 위험하다는 것은 일반인이 주로 오해하는 부분”이라고 역설했다.
최근 캐즘 등으로 전기차 수요가 정체를 보이고 있지만 글로벌 탄소중립 전환에 따라 전기차 전환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우리나라도 캐즘을 극복하고 전기차 시대에 발맞춰 합류하기 위해선 전기차 관련 오정보의 확산을 막고 올바른 해법을 추구하기 위해 제조사 및 정부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배터리 셀 제조사와 함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고, BMS를 통한 사전 진단으로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배터리 이상징후 통보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는 지난 28일 중장기 미래 전략인 ‘현대 웨이’를 공개하고 2033년까지 10년간 120조원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현대차는 이날 전략에서 전기차 캐즘에도 다가올 전동화 시대를 대비해 배터리 내재화를 지속 추진하고, 전기차 21개 모델 풀라인업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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