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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부산 출마의 변(4)

NSP통신, 정하룡 기자, 2011-12-26 11:51 KRD7
#문성근 #국민의명령 #부산 #출마 #변

이대로는 희망이 없어 ‘승리하기 위해 부산 시민 앞에 섭니다’

NSP통신-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가 26일 오전 부산시의회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정길 전장관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부산 북강서 을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사진=김한솔 인턴기자)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가 26일 오전 부산시의회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정길 전장관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부산 북강서 을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사진=김한솔 인턴기자)

[부산=NSP통신] 정하룡 기자 = 26일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가 국민 참여 정부 10년에 대한 뼈져린 반성과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 대통합을 촉구하며 26일 부산 북강서 을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문 대표는 이날 출마의 변에서 이대로는 희망이 없어 ‘승리하기 위해 부산 시민 여러분 앞에 섭니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문 대표 ‘출마의 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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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하겠습니다.

저는 2002년 노무현 후보를 돕고 나서 약속드린 대로 제 본업인 연기자로 돌아갔습니다. 참여 정부 5년 괴로웠습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노무현대통령이 나라를 절단낸 듯 공격해댔습니다. 봉하로 내려가시는 것 보고 도리어 해방감이 왔습니다. 이제 나도 마음 놓고 살수 있을라나. 불과 1년이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도대체 노무현대통령은 무엇을 하려 했던가. 왜 그 분은"성공과 좌절'이라 하셨나.

"경제를 죽였다"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있던 97년 외환위기로 IMF의 식민지가 되면서 7600불로 떨어진 개인당 국민소득을 국민의 정부가 2002년 1만2000불로, 노무현정부가 2007년 2만2천000불로 올려놨습니다. 1만불에서 2만불 가는데 7년 걸렸습니다. 미국이 10년 독일이 13년 걸렸습니다.

‘잘살게 해주겠다’ 해서 뽑아드린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

이대통령의 그 약속은 1%는 맞았고 99%는 틀렸습니다. 1%의 부자들은 더욱 잘살게 되었고 99%의 국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부자들이 90조의 세금을 감면 받는 동안 국가와 공기업 부채는 450조 늘어났습니다.

정권을 교체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당은 5개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거리에 나섰습니다.

“집 가까운데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는 말씀. 처음 읽을 땐,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얼마나 이 나라가 싫었으면 국립묘지를 거부하시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6월 김두관후보 지원 유세를 다니다 ‘그게 아니다’ 깨달았습니다.

2008년 가을 봉하에 가서 저는 그 분께"부산시장에 한 번 더 출마하시죠. 한 번 더 떨어지면 그 다음엔 되지 않겠습니까"저 정말 잔인했습니다. 그런데 물끄러미 저를 보시던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내가 왜 봉하에 내려왔겠습니까. 내가 여기 내려와 살면 열린우리당이 전국정당이 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내려왔습니다."

그 분은 봉하에 내려가실 때도,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지역 구도를 극복하는데 기여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거리 유세에서 말씀드렸습니다."정치인 노무현 지역구도에 제 머리 짓이기며 도전했다가 끝내 당신 머리 깨져 세상 떠났습니다.그런데 여기 김두관후보 그 노무현이 걸었던 길이 옳다고 지역구도에 또 도전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4번 떨어졌습니다. 여기 김두관, 5번 떨어졌습니다. 노무현 한 사람의 목숨으로 부족합니까. 그러면 김두관도 죽이세요. 또 떨어뜨리세요"

그런데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 마지막 날, 폐쇄회로에 찍힌 그 분의 모습이었습니다. 방금 컴퓨터에 그 무서운 글을 남기고 이제 15분이면 부엉이 바위에 올라설 분이 도대체 어떤 경지에 가셨기에 한가롭게 풀을 뽑고"농사 잘됩니까"묻습니까.

이 아둔한 놈은 그걸 금년 3월에야 깨달았습니다. 문익환목사의 삶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문목사는 76년 전주교도소에서 박정희대통령께 '민주화 하라. 아님 나는 죽겠다'며 단식을 했습니다. 유신 정권, 독하기도 하지 단식한지 20일이 넘어서야 가족에게 알려줘 면회를 갔더니 '절명시'를 읊으셨습니다.

"나는 죽는다. 나의 스승은 죽어야 산다고 하셨지. 그 말만 믿자. 그 말만 생각하자. 오늘도 죽음을 살자"

바로 그거였습니다. 그 분은 15분 후면 육체의 생명은 끝나지만, 인간 노무현은 역사 속에 영원히 산다는 것을 너무나 확신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분이 말씀하신 ‘운명’이 무슨 뜻인지 확연해지지 않습니까.

체념하는 ‘운명’, 포기하는 ‘운명’이 아니라 적극적인 ‘운명.'그래, 내가 실수한 것 있다. 잘못한 것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모든 것 내가 지고 가겠다. 그러니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이 내가 못 다한 일 해 다오"

여기 그 분의 친구 김정길, 문재인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운명을 거부할 수 없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7-80년대 아버지를 뵈면서 그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도망 다녔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차원이 다르다” 핑계를 대며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의 흐름이 너무 가슴 아파, 먼저 가신 분들께 너무 죄송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잘 알면서도 여기 부산, 거리에 섭니다.

지난 해 경남도민께서 김두관의 손을 잡아주셨듯 이 분들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그 분이 얘기하셨듯 대구에서 콩이면 광주에서도 콩이고 대전에서도 콩인 나라를 만들어 갑시다.

썩은 막대기를 박아도 1번을 찍을게 아니라, 사람 살 만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저희들 민주정부 10년 뼈져리게 반성합니다. 아무리 IMF의 강요였지만, 비정규직 800만, 정규직 800만, 양극화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아무리 씹어 돌려도 복지 예산 혁명적으로 늘려서 서민도 더불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충분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손잡고 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하룡 NSP통신 기자, sotong@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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