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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중국에서 성공한 스타기업가 10인

NSP통신, 임창섭 기자, 2011-11-13 17:15 KRD2
#중국 #성공 #기업가 #스타 #10년

장진둥·허샹젠·왕촨푸·왕젠린

[부산=NSP통신] 임창섭 기자 = 최근 LG경제연구원이 발간한 ‘LG료망중국(China Insight) 11월호’(제37호)에 중국과 관련해 매우 눈길을 끄는 내용이 실렸다.

중국의 유명 경제주간지 ‘신차이푸’의 창간 10주년 기념 특집호를 다뤘는데 이 특집호에는 지난 10년간 중국에서 성공한 4개 회사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10인의 기업가들이 집중 조명돼 있다.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로 꼽힌 4개사는 레이스조명, 신둥팡, 징둥상청, 텅쉰 등이었으며 기업가 10명에는 량원건, 류용싱, 션원룽, 마윈 등 기라성 같은 스타경영자들이 망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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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은 중국 토착기업들의 경쟁력 수준을 가늠해보고 중국 경영 및 비즈니스의 왕도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고 밝혔다.

본 통신사는 중국의 10년을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 ‘LG료망중국(China Insight) 11월호’에 실린 중국의 회사들을 모델별로 게재하고자 한다. 스타경영인은 모아 소개한다.(편집자 주)

NSP통신

[7]장진둥
1990년 그는 10만 위안의 자기 자금으로 난징의 닝하이로에 200평방미터의 상가를 임대한다.

쑤닝의 전신인 쑤닝쟈오쟈덴의 탄생이다. 20년 후, 쑤닝은 중국 최대의 유통그룹이 되었다.

브랜드 가치가 508.31억 위안에 이르며, 2010년까지 1500개의 체인점을 거느리고, 직원 15만 명에 연 매출이 1500억 위안에 이른다.

쑤닝의 성장은 장진둥 자신의 노력과 가족의 지지 덕분이었다.

또한 그와 그룹 성원 전체의 분투, ‘주주권 분배’의 형식으로 사장과 관리자 전체가 함께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기업 창립 초기 그는 “서비스는 쑤닝의 유일한 상품”이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비성수기 가격할인 등 당시로선 혁신적인 방법으로 빠른 시간 내 중국 에어컨 판매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99년 장 쑤닝을 이끌고 종합가전 영역에 뛰어들었다.

3년 내 1500개 체인점 개설 목표를 내걸고 전국을 누빈 결과 중국 가전제품 유통시장의 구조를 변혁시켰다.

이처럼 세상을 놀라게 한 창업 노정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창업은 사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꼭 세상을 놀라게 하려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큰 일이 되는 것이다.”


[8]허샹젠
1968년 5월, 허시앙찌엔과 23명의 같은 동네 주민은 5000위안의 자금을 모아 베이제반수랴오생산조를 세운다.

1980년에는 선풍기 제조를 필두로 가전제품 시장에 진출한다. 2010년 메이디의 판매 수입은 1000억 원을 넘어섰다.

메이디의 발전은 허샹젠의 권한위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의 고향인 포산시(佛山市) 순더구에서 허샹젠은 ‘인재를 가장 중시하는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관리자들에게 주는 임금은 매우 높다.

메이디 사업부 고위임원의 몸값은 100만 위안이 넘으며, ‘2차그룹’(많은 손(孫)회사를 거느려 사실상 그룹화한 메이디 내 사업부) 사장의 몸값은 1000만 위안을 상회한다.

동종업계의 관리자들은 부러운 심정으로 “그들은 사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허샹젠의 기질을 매우 잘 아는 기업 내 한 인사는 “허 사장의 남다른 점 중 하나는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자신이 얼마나 벌 수 있을지를 계산해 보기는 하지만, 자기 아랫사람이 얼마나 버는지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고 ‘벌 수 있는 만큼 벌라’고 한다”고 전했다.

그의 사업부 CEO에 대한 권한위임은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사업부 CEO들은 상품의 개발, 구매, 생산, 판매 등 모든 단계에 걸쳐 전권을 갖고 있으며, 재정권도 일부 행사하고 있다.

예컨대, 생산능력 확장과 관련해 한 명의 CEO가 수천만 위안의 투자 심사비준권을 갖고 있다.


[9]왕촨푸
버핏(Buffett)의 사업 파트너인 찰스 멍거의 눈에 왕촨푸는 에디슨과 잭 웰치를 섞어놓은 것 같은 사람이다.

과분한 칭찬일지 모르지만, 중국이라는 이 특수한 사업 토양에서는 잭 웰치와 같은 성숙한 기업가가 탄생하긴 힘들지만 왕촨푸와 같은 본토 기업가들이 배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본토기업가들은 종종 이공계열의 배경을 가지고 있고, 1980~1990년대에 졸업했으며, 엔지니어와 기업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들은 또한 MBA 방식의 사고훈련을 받은 적이 없지만, 천부적인 비즈니스 감각과 ‘올인’ 하는 모험정신을 갖고 있다.

1995년 2월 왕촨푸는 사촌형인 뤼샹양에게서 250만 위안을 빌려 20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선전 리엔탕에 비야디과학기술유한공사(迪科技有限公司)를 설립한다.

기술 혁신과 비용 상의 우위를 앞세워 1996년 비야디 사는 삼양사(三洋)를 대신해 대만 다바디엔쯔의 전지공급상이 되었다.

그 후 니켈카드뮴전지 세계 판매량 1위, 니켈수소전지 세계 판매량 2위, 리튬배터리 세계 판매량 3위의 성과를 일궈낸다.

전지 시장을 안정적으로 장악한 후 왕촨푸는 2003년 1월 2.7억 위안으로 시안 태주자동차의 지분 77%를 매입하겠다고 선포했고, 상호를 지리(吉利)로 바꾼 뒤 중국 제2의 민영 승용차제조기업이 되었다.

과학기술형 제조기업 비야디는 부단히 기술혁신에 매진하고 있다.

‘기술 광인(狂人)’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왕촨푸는 중국 기업계에 널리 퍼져있는 ‘기술공포증’에 대해 “이러한 공포는 라이벌 기업들이 후발기업들에게 가하는 일종의 산업 공포다.

‘당신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비용이 엄청나게 들고 연구개발은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을 끊임없이 속삭여 결국은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동차란 결국 쇳덩어리를 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도전정신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비야디는 요즘 주가폭락, 인원 대폭삭감, 판매망 조정 등의 위기를 겪고 있다.


[10]왕젠린
부동산계에는 한때 “남쪽에 ‘완커’가 있고, 북쪽엔 ‘완다’가 있다”라는 말이 돌았는데, 완커(万科)는 주택사업에, 완다는 상업 부동산에 주력하고 있다.

다렌의 완다그룹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부동산업계의 ‘숨은 큰손’ 왕젠린이다.

그는 1989년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 뒤 1992년 8월 다렌완다부동산집단공사의 CEO가 되었다.

완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자산이 1400억 위안, 연간 매출 800억 위안, 연 납세액은 95억 위안이라고 한다.

상업 부동산 개발은 줄곧 완다의 핵심산업이었고, 완다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상업 부동산 주문서‘라는 참신한 모델을 만들어냈다.

현재 완다는 중국 전역에 33개의 완다광장, 15개의 5성급 호텔, 600개의 영화관, 26개의 백화점, 30개의 KTV를 보유하고 있다.

월마트, 타임워너, OBI 등 12개의 다국적 기업과 계약을 맺고, 중국 전국 대도시, 중등도시에 완다광장을 조성했다.

왕젠린은 “다행이다. 2001년 상업부동산으로 사업 핵심을 옮긴 이후 우린 현재 20개의 쇼핑센터와 여러개의 5성급 호텔을 갖고 있다. 우린 1평방미터의 방도 팔지 않았지만, 거기서 나오는 임대료로 대출 이자를 모두 갚고 우리 형제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보장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수년 전 내가 상업부동산을 시작한 중요한 이유였다”고 말한다.

임창섭 NSP통신 기자, news1@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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