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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금정굴 억울한 죽음 ‘경찰이 처형’했다.

NSP통신, 강은태 기자, 2011-09-25 09:24 KRD7
#금정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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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DIP통신] 강은태 기자 = “경찰이 처형했다. 우리는 스스로 한 게 아무것도 없다.”

1950년 10월 9일부터 31일 까지 당시 이무영 고양경찰서장의 지휘아래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대동청년단?태극단원들이 고양?파주지역 수복 이후, 지역주민 중 인민군점령시기에 부역한 혐의가 있는 자와 부역혐의로 행불 또는 도피한 자의 가족을 연행한다.

그리고 이들을 관내 각 지서 및 치안대 사무실, 창고 등에 구금했다가 고양경찰서로 이송한 다음, 3~7일간의 조사를 거쳐 10월 9일부터 한 번에 20~40여 명씩 지금의 일산 중산마을 맞은편 탄현동 뒷산, 일제시대 폐금광 금정굴로 끌고 가서 총살하고 암매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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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 고양경찰서 관내 경찰과 20여 명의 태극단?치안대 등 경찰보조 인력이 가담 하며 금정굴 현장에서는 5인 1조의 경찰관 2개조가 희생자 5명씩을 굴 방향으로 무릎을 꿇게 하고 등 뒤에서 사격하여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태극단장은 “경찰이 처형했다. 우리는 스스로 한 게 아무것도 없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어느덧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집과 일터, 길에서 아무렇게나 끌려가 무자비하게 희생당한 피학살 유가족들은 친인척들의 주검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기나긴 세월을 ‘빨갱이 가족’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천추의 한을 품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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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있은 지 61년, 금정굴은 어느 누구도 갈 수 없는 곳, 결코 그날의 참상을 말해서는 안되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한편, 24일 1995년 고양시 황룡산 금정굴에서 발굴되어 서울대학교병원에 보관되어 있던 153구의 금정굴 희생자의 유해가 16년 만에 고양시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후 1시 일산동구청 앞에서 ‘금정굴, 평화의 바람을 안고 돌아오다’라는 슬로건으로 ‘제61주기 고양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전’ 등을 거친 후 설문동에 위치한 청아공원에 유해가 2년 동안 임시 안치된다고 고양시는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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