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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에렛, “폭넓은 대화로 잠재력 이끌어야”

NSP통신, 황기대 기자, 2010-05-10 16:36 KRD2
#피아니스트 #뮤직트리 #에렛
NSP통신-딸과 함께 피아노 어드벤쳐를 연주하고 있는 안드레아스 에렛.
딸과 함께 피아노 어드벤쳐를 연주하고 있는 안드레아스 에렛.

[DIP통신 황기대 기자] 연주활동 뿐 아니라 마스터클래스와 세미나를 통해 교육자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에렛(Andreas Ehret). 지난 4월 <한국피아노학회 슈만집중탐구> 마스터클래스에서 좋은 강의로 큰 호응을 얻은 그를 만나 피아노 교육과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피아노를 몇 살 때 시작하셨나요? 처음에 어떤 교재로 배우셨나요?

저는 6세 때 피아노를 시작했고, “Willy Burkhard” (윌리 부르크하드)의 교본으로 배웠습니다. 그림도 없이 흑백으로 된 교재인데 정말 지루했지요. 피아노교수법이 발달하기 이전에 나온 교재라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았고요. 지금 제 딸이 배DIP우는 피아노 어드벤쳐 같은 교재를 보면, 피아노교수법이 발달한 덕에 요즘 아이들은 좋은 교육적 혜택을 누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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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처럼 피아노를 좋아하시는 분도 연주나 레슨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혹시 있었나요?

물론 여러 번 있었지요. 피아노와 같이 산다는 것은 마치 연애를 하는 것과 같지요. 한없이 사랑하다가도 때로는 너무 화가 나서 헤어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금방 다시 그리워지고 용서하게 된답니다. 제겐 피아노와의 삶이 바로 그렇습니다.

◆교수님의 마스터클래스에서 테크닉적인 부분 뿐 아니라, 슈만이 처한 환경과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작품을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음악의 눈을 길러주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음악도, 피아노 레슨도 인간의 삶 전체와 연관이 있지요. 교사는 피아노 작품에도 몰두해야겠지만, 그 외에도 예술전반, 인문분야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과 대화를 통해, 학생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독립적인 음악가로 성숙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론이나 피아노 테크닉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음악 전반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학생에게 내재되어 있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스스로 끌어내도록 도와줍니다. 대화를 통해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물론 제 수업에 처음 오는 학생들이 가끔 “이 교수님은 왜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시킬까?” 하고 놀라는 경우도 있지만요.

◆피아노 어드벤쳐에서는 CD를 통해 기초부터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를 듣게 하고, 즉흥연주를 격려하는데 이러한 교수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어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에서도 ‘듣고, 말하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원어민 발음을 많이 들어야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말하기’는 피아노에서 ‘즉흥연주’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어를 어떻게 배웠습니까?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순으로 익혔지요? 분명 ‘읽고, 쓰기’ 이전에 ‘듣고, 말하기’가 먼저였을 겁니다. 그러면, 피아노 연주는 어떻습니까? 기존의 피아노 교육은 음악적 언어도 알지 못하면서 바로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늘 음표읽기에 시간을 쏟고, 많은 교사들이 계속 ‘읽기’를 강조해왔지요. ‘말하기’ 같은 즉흥연주는 해본적도 없이 그저 지루한 음표와의 싸움을 음악이라고 착각해온 것입니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를 연주하면서도 간단한 생일축하노래 한곡 즉흥적으로 연주하지 못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예가 아니겠습니까?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는 경험, 그것이 음악적으로 훌륭하지 않다하더라도 매우 값진 경험이 됩니다. 이것은 동기를 유발하고,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저력을 키워주니까요.

◆따님이 피아노 어드벤처 4급을 배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육자로서 이 교재를 어떻게 보시는지, 또한 아빠로서 자녀가 어떠한 피아노 교육을 받길 원하시는지요?

피아노 어드벤쳐는 독일에서도 유명하여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 교재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흥미로운 곡들을 통해 다양한 조성과 음계, 다양한 스타일을 배우고, 피아니스트를 위한 정통 테크닉도 어릴 때부터 재미있게 익힐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저도 시간 날 때마다 어드벤쳐의 듀엣파트를 연주하며 딸아이와 앙상블을 즐깁니다. 아빠로서 제 딸아이가 음악을 ‘기쁨’으로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음악에 즐겁게 빠져들 수 있다면 나중에 힘든 부분도 참고 스스로 열심히 하게 되거든요.

◆한국에서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교수님은 바쁘신 일정 속에서 가족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요?

저는 딸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피아노 연습을 도와줄 뿐 아니라 여행도 많이 하고, 음악회도 가고, 책도 읽고, 둘이 씨름도 하지요. 좋은 음악가가 되기 위해선 재능과 인내 외에도 폭넓은 관심과 경험이 필요한 것이니까요. 어떤 이가 유명한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에게 “어떻게 하면 피아노를 이렇게 잘 칠 수 있나요?” 하고 묻자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피아노는 제 인생의 1순위가 아니거든요.” 이 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지 생각해봅시다. 때때로 부모들은 자녀의 재능을 길러주는 데 집중하여 자녀에게 최고가 될 것을 종용하고 닦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좋은 것은 부모 스스로가 모범적인 삶을 살며 직접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뮤직트리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지요.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다(Life without music is an error)” 이 말은 우리 음악교육자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가 음악을 가르치면서, 혹은 삶 속에서 진정 음악을 느끼고, 즐기지 않는다면"잘못(error)"를 범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부터 음악 안에서 늘 깨어 공부하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학생들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올바른 길로 따라오게 됩니다. 학생들의 건강한 인격 형성에 초석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 음악교육자들이 기억해야할 가치 있는 삶의 과제가 아닐까요.

[DIP사진설명 : 딸과 함께 피아노 어드벤쳐를 연주하고 있는 안드레아스 에렛 교수. 사진제공=뮤직트리.]

DIP통신 황기대 기자, gidae@dip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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