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NSP통신] 도남선 기자 = 점입가경(漸入佳境)입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6월 24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전격 공개한데 이어, 7월 2일에는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국가기록원장으로 하여금 대화록 자료제출요구안을 통과시켰는데, 정작 사태는 사초(史草) 실종 사건으로 비화됐으니 말입니다. 애초에 돈이 없던 부모의 통장을 압류한 채, 자식 간에 유산 소송을 한 격입니다.
여야는 똑같은 회의록을 놓고도 ‘NLL 포기다’, ‘포기가 아니다’라는 각자의 입장만 되풀이 하고, 보수와 진보 언론도 각자의 프레임으로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관련한 여론조사 역시, ‘NLL 포기가 아니라고 보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의견과 ‘여론조사 설문 문항이 잘못됐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릴 뿐입니다.
그 중 필자는 여론조사와 관련한 논란, 그리고 실제 다른 질문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국정원이 6월 24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 여론조사 기관 G사는 그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가장 먼저 실시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응답자의 53% 가량이 ‘NLL 포기 발언은 아니다’라고 응답해 절반을 넘었고, 24%만이 ‘NLL 포기’라고 응답했습니다. 해당 기사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 정치 뉴스 섹션에서 당일 가장 많이 읽은 뉴스로 랭크됐습니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쟁점에 대해, 여론 재판을 내려준 셈이어서, 네티즌들로부터 28일 ‘가장 많이 읽은 뉴스’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민주당은 반색했고, 보수 진영은 반발했습니다.
이에 대표적 보수논객인 미디어워치의 변희재 대표는 G사의 조사결과가 보도된 이후, G사의 질문 방식은 ‘NLL 포기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유도한 것으로서, 질문을 달리 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G사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 NLL 지역에서 우리 군대를 철수하고 평화지대를 만들어 남북한 공동 어로, 공동 개발 제안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영토인 NLL 포기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이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NLL 포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변 대표가 주장한 대로 질문을 구성하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 즉 NLL은 국제법적인 근거가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다. 김정일 위원장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고, NLL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이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얼미터는 이후 G사의 질문 방식 그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다른 날 변 대표가 주장한 질문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각기 다른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조사대상: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500명, 조사방법: 유무선 RDD 자동응답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4.4%p)
1. G사의 방식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조사의 시점이 차이가 있었음에도 질문이 동일했으니 거의 비슷한 결과를 도출하였습니다. 응답자의 55.6%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가 아니라는 응답을 했고, 30.2%만이 NLL 포기라는 응답을 했습니다. G사의 이전 조사보다 양측 의견이 좀 더 높게 나타났을 뿐,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2. 변희재 대표가 주장하는 질문, 그리고 선택지를 “NLL 포기다”, “포기가 아니다”라는 2점척도에서 더 상세히 분류하여, 4점척도로 조사한 방식은 G사 방식과 달리 “NLL 포기다”, “포기가 아니다”라는 양측 의견이 아주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NLL 포기를 넘어 상납”이라는 응답이 16.6%, “사실상 NLL 포기”라는 의견이 24.9%로, 두 응답을 합치면 41.5%가 ‘NLL 포기’라는 응답을 했고, 이와는 반대로 “NLL 포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이라는 의견이 17%, “NLL 포기와는 완전히 무관한 내용”이라는 의견이 23.1%로, 두 응답을 합치면 40.1%로 나타나, “NLL 포기” 의견이 오차범위 내인 1.4%포인트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결국 NLL 포기 논란과 관련한 여론조사는 질문에서 어느 부분을 발췌하여 설명하느냐에 따라 조사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인데요. 여기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응답자들에게 “회의록 전문을 보았는지” 조사한 결과, ‘회의록 전문을 다 읽어봤다’는 응답자는 16.5%에 불과했고, ‘읽어보지 못했고 언론에 소개된 일부분만 봤다’는 응답이 73.8%, ‘전혀 보지 못했다’는 응답이 9.7%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결국 상당수의 응답자들은 회의록 전문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언론이나 여야에 의해 발췌되고 재해석된 주장, 즉 짜여진 프레임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한 상황에서, 여론조사 질문을 할 때 어떤 부분을 발췌하느냐에 따라 조사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NLL 포기” 논란과 관련해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인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치 교통사고를 목도하지 못한 사람에게 증인심문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NLL 포기’ 논란 외에 NLL 관련 유권자들의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는 가능합니다. 가령 사초 실종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서 하는 것이 적절한지, 특검을 통해서 하는 것이 적절한지의 질문은,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사초 실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관련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죠.
실제 이와 관련한 조사결과를 소개하면, 특검 수사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60.6%, 검찰 수사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20.9%로 나타나, 특검에서 수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응답을 많이 해서 야권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결과가 나타난 반면, 사초 실종의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 있을 것’이라는 의견(29.7%)보다는 ‘노무현 정부에 있을 것’이라는 의견(37.6%)이 더 높게 나타나, 여권에 유리하게 나타났습니다.
결론입니다. 이제 NLL 포기 논란과 사초 실종 사태는 정치권에서는 더 이상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결국 사법부의 판단으로 넘어갈듯 한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입법부는 언제쯤 스스로의 권위를 찾을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면서, 이번 NLL 포기 논란의 경우, 여론조사 기관들도 스스로의 영향력과 책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마철 축 늘어진 가로수처럼 마음이 무거운 계절입니다.
NSP통신에 칼럼을 기고한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현재 한국정치조사협회 상임이사,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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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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