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05-7182802122

동래 現 생활하수로, 조선시대 축조된 ‘하수관거’로 밝혀져

NSP통신, 도남선 기자, 2013-08-14 09:02 KRD7
#부산동래 #생활하수로 #하수관거 #부산시립박물관 #동래시장
NSP통신-부산시립박물관이 발굴한 조선시대 하수관거. (부산시 제공)
부산시립박물관이 발굴한 조선시대 하수관거. (부산시 제공)

[부산=NSP통신] 도남선 기자 = 부산시립박물관(관장 양맹준)은 지난 7월 16일부터 동래구 수안동 183-2(도)에서 실시한 유적 발굴조사 결과 현재 생활하수로로 이용되고 있는 배수시설이 조선시대 축조된 하수관거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충렬대로에서 동래시장 오거리로 이어지는 일방통행 2차선 차로로 2012년 노선버스를 포함한 차량 통행으로 인한 도로 침하 원인을 조사하던 중 하수관거 존재를 인지하게 됐다.

도로 침하로 인해 교통사고의 위험성이 우려되고, 문화재의 지속적인 훼손 가능성이 높아 동래구청에서 올해 6월 부산시립박물관에 발굴조사를 의뢰하면서 이번 조사가 시작됐다.

G03-9894841702

동래시장 오거리에서 충렬대로까지 총 240m에 걸쳐 유적이 매설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됐으나, 조사대상 지역이 일방통행 2차선 차로이고, 교통량이 상당한 곳임을 감안하여 교통통제가 가능한 60.6m를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또한 조사대상의 하수관거는 현재도 하수로로 이용되고 있어, 수차례의 입회조사를 거치면서 물길돌리기 공사를 완료한 후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선시대 하수관거는 뚜껑과 벽체, 바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잔존상태는 조사 구간 중 총 5.1m 정도 뚜껑돌이 유실되었고, 벽체와 바닥은 대체로 축조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규격은 뚜껑돌 길이가 100~120cm, 폭 35~50cm, 두께 10~20cm 정도로 각각 장방형에 가까운 다듬은 돌을 덮었는데 벽체의 최상단석 위에 걸쳐 놓은 후 뚜껑돌과 뚜껑돌 사이의 틈에는 작은 잡석과 자갈돌을 끼우고 점토로 메워져 있었다.

바닥은 다양한 크기의 판석을 깔고 작은 잡석과 자갈돌 등으로 빈 공간을 메운 후 바닥의 부석과 맞물리게 하여 벽체를 쌓아 올렸다. 벽체는 평균 가로 33cm, 높이 22cm 정도로 가공한 화강암을 3단 쌓았고, 바닥 폭은 71cm내외(2.3척)이며, 뚜껑돌 하면에서 바닥돌까지의 깊이는 82cm 내외(2.7척)이다.

이번에 조사한 하수관거는 동래읍성 내의 남서쪽에 해당하며, 남쪽으로 동래읍성 남문지가 위치하고, 남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동래읍성 해자가 위치하며, 그 남쪽으로는 서북쪽에서 남동쪽으로 온천천이 흐른다.

하수관거의 위치와 남북으로 진행하는 방향으로 볼 때, 읍성 내에 발생한 하수는 남문을 지나 온천천으로 유입하는 작은 하천으로 흐르게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남북방향으로 축조된 하수관거의 동쪽과 서쪽 일부에 동서방향으로 난 지선의 하수관이 연결돼 있다.

이는 본선의 하수관거에 연결된 지선의 하수관이 주변의 하수를 본선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동래읍성 내에 체계적인 하수시설이 갖추어져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부산시립박물관 김유정 씨는 “이번 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하수관거의 규모와 축조 양상을 파악했고, 동래읍성 내에 본선과 지선으로 이루어진 정연한 하수 배출체계가 만들어졌음을 확인했다. 또한 부산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선시대 하수관 시설을 확인해 조선시대 읍성 내부의 하수 배출 체계를 구명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게 돼 의미가 매우 크다”면서,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유적의 축조 시기, 건축학적 특징, 미조사구간의 향후 보존대책 방안 등을 계속 연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도남선 NSP통신 기자, aegookja@nspna.com
<저작권자ⓒ 한국의 경제뉴스통신사 NSP통신.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