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NSP통신) 구정준 기자 = 최근 5년간 퇴직한 법관들 중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재취업이 제한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제한 제도가 퇴직 법관들에게는 유명무실한 사실상 ‘프리패스’가 되고있다.
더불어민주당 소병철(순천‧광양‧곡성‧구례갑, 법사위)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16년1월1일~2021년8월31일) 퇴직자 취업심사결과'에 따르면 5년 8개월간 행해진 총 36건의 취업심사에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모두 취업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중에서도 7건은 삼성SDI,KT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기업으로 취업이 제한되는 기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유’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취업승인이 떨어졌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국가나 지자체의 정무직 공무원, 법관 및 검사 등과 각 기관별 규칙에서 추가로 정한 공직자(취업심사대상자)는 퇴직일로부터 3년간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관(취업심사대상기관)에는 취업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
그러나 이 경우에도 취업심사대상자의 업무와 취업심사대상기관과의 밀접한 관련성이 없다는 확인을 받거나 취업승인을 받은 때에는 예외적으로 취업이 가능하다.
대법원은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대법원규칙’으로 법관 외에도 5급 공무원과 5급 상당의 임기제공무원을 취업심사대상자로 정하고 있으며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대법원규칙 제34조의2(취업심사대상자)
, 자본금이 10억원 이상이고 연간 외형거래액이 100억원 이상인 영리 목적의 사기업 등 일정 규모 이상의 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취업심사대상기관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그 전문성이 증명되는 경우로서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은 경우’ 등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면 취업이 가능하다.
최근 화천대유자산관리 주식회사(화천대유)로부터 거액의 고문료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경우엔 화천대유가 대법원 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취업심사대상기관에 해당하지 않아 이러한 취업심사마저 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통로로서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마스터 키’가 되어 준 셈이다.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제도는 퇴직공직자와 업체간의 유착관계를 차단하고 퇴직 전 근무했던 기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이렇듯 원칙과 예외가 전도돼 운용되고 있다보니 취업제한제도의 무용론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병철 의원은 “특히 법관의 경우는 법을 적용하고 심판하는 공직자로서 다른 공직자보다도 더 엄격한 법과 윤리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취업심사제도의 허점을 이런 식으로 남용하고 있다는 것은 입법의 취지를 몰각시키고 공직자로서의 권위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 취업제한 관련 규정은 엉성한 그물처럼 이리저리 다 빠져나가게 되어 있어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며, “규칙 개정을 통해 취업심사대상기관의 범위를 더 확대하고, 취업을 승인하는 예외적인 사유도 더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소 의원은 “대법원이 더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함으로써 법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공직윤리를 바로 세우고 다른 공직사회의 모범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NSP통신 구정준 기자 gu2828@nspna.com
저작권자ⓒ 한국의 경제뉴스통신사 NSP통신·NSP 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