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수가야 세계유산 등재 위해 혼신 다해야(전북) - NS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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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장수가야 세계유산 등재 위해 혼신 다해야
(입력) 2018-02-13 20:31
(태그) #장수군, #최용득 군수, #장수가야, #세계유산, #삼국시대
최용득 장수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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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득 장수군수
최용득 장수군수

(서울=NSP통신) 산지가 75%인 장수군은 심심계곡으로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의 관광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장수군은 전국 8대 종산중 하나인 장안산이 우뚝 솟아있고, 금강의 발원지이자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으로 언제나 아낌없이 생명을 나눠주는 청정지역의 모태이기도하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도 원형 그대로 보존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와 왜장을 껴안고 순절한 한국여인의 표상인 주논개님이 탄생하신 곳이며, 독립운동가 33인의 한분이신 백용성조사출생성지가 있는 충절의 고장이며, 남덕유산, 방화동 가족휴양촌, 와룡자연휴양림, 장수물빛공원 등이 사계절 아름다운 휴양처로 손꼽힌다.

더불어 장수군은 지난 2016년 sbs방송국 조사에서 전국 226개 지자체 중 가장 살기 좋은 도시 4위로 선정된 자랑스런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장수는 1500년 전 잠들었던 가야문화유산이 확인되면서 철의 메카, 중심지로 급조명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철의 왕국 가야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에 비해 한국 고대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 법인데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정사가 되지 못한 채 매장됐다. 장수가야도 역사의 뒤편에 묻혀 있었다.

가야는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있던 작은 국가 혹은 그 국가들이 연맹체를 이루던 곳으로 600년 찬란한 역사를 꽃피웠지만 가야의 역사는 그 기록의 부재로 왜곡돼 왔다. 그러나 장수가야는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물들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역사기록이 전무했던 장수가야는 20여년전인 1996년 삼고리 가야고분군이 처음 확인된 이후 다시 사라질 뻔 했으나 장수군에서 최근 적극적인 관심으로 장수가야를 수면위로 당당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 240기의 왕릉급 고총고분과 63개소의 제철유적, 21개소의 봉수유적, 11개소의 산성유적이 출토되면서 장수군이 가야문화권의 중 호남지방의 중심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수군민의 염원이 촛불처럼 뜨겁게 불타올라 가야사 조사정비가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어 장수가야의 부활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이는 장수가야의 긴 잠을 깨운 장수군민의 관심과 애정이 깃들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제 더불어 장수가야의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서 더욱더 큰 관심으로 발 벗고 나서야한다. 1500년 전 백두대간을 호령한 장수가야를 꽃피워야함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우선 발굴조사로 확인된 장수가야 봉수유적을 통해 대전국립과학관 정보통신 연표에 표시된 봉수의 원조(1159년, 고려 공민왕)기록부터 수정요구 할 시점이다. 장수가야에서 확인된 봉수가 최소 오백년 이상 빠른 시기에 운영된 것이 확인되었기에 이를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토기로서 대가야의 영역을 설정한 현 대가야 영역을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 장수가야는 토기가 아닌 봉수의 분포로서 그 영역을 설정한 지역으로 대가야와 별개인 가야의 일국(一國)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토대로 세계유산등재를 위해 박차를 가할 일이다. 우리의 이웃인 고령군은 후기가야의 맹주역할을 했던 대가야가 자리했던 것으로 확인돼 지산동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키려고 군청소재지인 고령읍을 지난 2015년에 대가야읍으로 행정명을 바꿨으며, 지역민들도 나서서 대중교통부터 가야교통, 택시, 관내 상호까지도 가야로 도배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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